장세훈 | 2006/07/03 11:45

예부터 선가(禪家)에서는 다선일여(茶禪一如)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도를 아끼고 중시해왔다. 하지만 오늘날 다도는 선가의 범주를 넘어 하나의 문화코드로 자리잡았다 해고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영역이 확장돼 있다. 한 잔의 차, 그 안에서 옛 성현들은 속세의 시름을 덜었고 작은 우주를 보았다.
이제 바야흐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됐다. 여름과 차(茶), 다소 부조화한 듯 보이지만 차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여름이 곧 차의 계절임을 안다. 이열치열이란 고사를 굳이 떠올리지 않고서라도 적당히 데워진 차 한잔의 그윽한 향과 맛을 음미하다보면 가슴과 등줄기로 맑고 청정한 기운이 흘러내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여기 우리 전통 차와 다도문화를 다룬 3권의 신간을 소개한다. 조주선사가 남긴 ‘끽다거’의 운치를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편집자 주〉

찻물 끓는 대숲소리 솔바람소리
쓸쓸하고 청량하니
맑고 찬 기운 뼈에 스며 마음을 깨워주네
흰 구름 밝은 달 청해 두 손님 되니
도인의 찻자리 이것이 빼어난 경지라네.
초의선사의 《동다송》 중에서

# 초의선사의 다맥이 살아 숨쉬는 일지암
여연스님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차’

해남 일지암

해남 대흥사 일지암은 우리나라의 다도를 정립한 초의선사(1786∼1866)의 다맥이 이어져 내려오는 곳으로 다인들에게 일종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일지암에서 초의선사의 맥을 따라 지난 35년 간 우리 차의 전통법제를 이어 온 전 조계종총무원 기획실장이자 (사)대한민국차품평회 이사장 여연스님이 우리 차의 역사와 의미·전통 제다와 행다법 등 차문화 전반을 다룬 책 한 권을 발표했다.
여연스님은 얼마 전 부산에서 성료한 ‘제1회 부산국제차문호대전’에서도 공동대회장을 맡아 우리 차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전령사 역할을 톡톡히 한 바 있다.
스님은 초의선사의 ‘동다송’을 읊으며 차와 얽힌 인연을 풀어내는 데서부터 차의 정의·역사·문화 등을 아우르며 차에 관한 다각적 접근을 시도한다. 그렇다고 신간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차》가 스님의 현학취미 차원에 그치지 않는 것은 “차는 우리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스님 스스로의 다짐에 그 실마리가 숨겨져 있다.
스님은 차의 대중화·일상화를 강조하면서도 왜곡된 다도 문화에 대한 비판은 서슴지 않는다. 차문화는 그 자체로 패스트푸드적인 현대인들의 생활에 이른바 휴(休)를 제시하는 대안적인 방편이 된다. 즉 단순히 먹는 음료를 넘어 하나의 보편적인 문화로서 계승·발전돼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의 차인들은 참선의 ‘선(禪)’자만 넣으면 ‘선차(禪茶)’가 되는 양 너스레를 떤다. (중략) 선은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고 깨달음 속에서 지혜로 획득되는 것이다. 조주스님의 끽다거(喫茶去)화두가 어디 찻잔에 있고, 찻자리의 모양새에 있겠는가? 형상을 갖추고 한 가닥 의미와 한 꼬투리 개념이 일면 그것은 이미 선이 아닌 것을, 어찌 모양새로 선차를 그려낸단 말인가. 선차하는 마음으로 들어서기 위해 선의 방편으로 행다를 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그저 선을 붙여내어 마치 차를 하면 도깨비 방망이처럼 무조건 깨달음을 얻는 듯 착각하는 것이 지금 펼쳐지고 있는 우리 다계의 현실이다.” 〈본문 중에서〉
현암사 / 1만 5천원.

# 다인들의 흔적 좇아 전국을 누비다!
소설가 정찬주의 ‘다인(茶人)기행’

대표적인 불자소설가 정찬주의 《다인기행》은 초의선사부터 서산대사·다산 정약용·고산 윤선도·율곡 이이·추사 김정희 등에 이르기끼지 우리 역사의 큰 줄기를 이뤄온 위인들의 각별한 차사랑을 잔잔한 수필체로 담아내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차 유적지를 찾아가 다인들이 남긴 흔적을 들여다보는 화두는 ‘그들에게 차 한 잔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였다. 그래서 책의 부제를 ‘옛사람의 차 한 잔. 마음 한 잔’이라고 달았다. 차 한 잔을 마시는 그들의 삶의 태도나 혼을 만나고서 나에게 돌아와 진정한 차 한 잔의 의미를 묻는다는 것이 기행의 마음가짐이었다.”
그렇다. 저자가 직접 다인들의 흔적을 좇아 전국 방방곡곡을 성실하게 답사한 흔적은 이 책 곳곳에 역력하다. 그래서 흡사 한 권의 역사서를 읽은 듯한 지적포만감을 선사하기에도 부족함이 없다고 하겠다.
초의선사에게 차를 보내달라고 편지를 쓴 추사 김정희·유배지에서 각고의 슬픔과 불안을 차를 마시며 극복하고 역작 《목민심서》를 남긴 다산 정약용·노론의 태수로서 차의 정갈함을 벗삼았던 우암 송시열·생육신의 한사람으로 불교와 유교 모두에 정통한 불운의 천재 설잠 김시습 등의 모습은 비단 책에 의해 묘사된 부분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생각게 한다.
평생 도의와 진리를 섬겼던 그들의 대쪽같은 성품 이면에 차를 사랑하고 시를 읊었던 낭만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됨은 분명 반갑고도 뜻하지 않은 감동으로 다가올 것이다.
또한 책갈피마다 아름다운 사진과 그림도 많은데, 중견사진작가 유동영 씨와 전 동국대 예술대학장이자 명예교수인 송영방 화백의 작품이다.
열림원 / 1만 3천원.

# 문화·철학으로서의 다도, 그 끝없는 지평
한국차인연합회장 박권흠의 ‘한국의 차문화’

“컴퓨터가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줄지는 모르지만 결코 인간을 행복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오히려 인간을 고독하게 만들 것이다. 인간이 따뜻한 인간관계를 그리워할 때 차 문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류는 깨닫게 될 것이다. 차 문화는 동양문화의 뿌리이며 꽃이다.” 〈본문 중에서〉
초의문화상 수상자이 (사)한국차인연합회 박권흠 회장이 신작 《한국의 차문화》를 발표했다.
《한국의 차문화》는 한국차문화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개괄서다.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고대에서부터 전래된 고유 다맥의 역사(1장)와 일제시대 이후 맥이 끊긴 한국의 다문화가 어떻게 계승·발전해왔는지를 살펴보는 현대의 차문화(2장)·다도정신(3장)·한국의 전통다례 (4장) 등이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특히 현대의 차산업과 다례의식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박식한 지식을 자랑하고 있다.
삶과 꿈 / 1만 2천원.
장세훈 기자 xsatin@jub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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