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령 | 2006/12/11 10:33

차향기 흠뻑나는 전시회가 열렸다. ‘3인3색의 색깔있는 다화전’이라는 주제로 세 장르의 화가 송영방(한국화)·이성주(서양화)·수안스님(선화)이 서울 관훈동 윤갤러리에서 다화전을 열었다.
우현 송영방은 1960년대 동양화의 현대화를 추구하며 일군의 실험적 작품을 선뵀던 묵림회(墨林會)멤버로 반세기동안 한국화단을 지키며 활발히 작품활동을 하는 화가다. 지난 5일, 우현을 만나 전시와 작품활동에 관한 얘기를 들어봤다.



화폭에 은은한 茶향기

우현 송영방 씨(70)는 이번 전시회에 참여하라는 제안을 받고 흥쾌히 수락했다 했다. 차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서양의 영향인지 차보다 커피를 마시는 게 더 보편화된 세상입니다. 하지만 차는 신라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온 고유의 문화이자 계승해야 할 전통입니다. 이번 전시가 일반인들에게 차와 다도문화에 대한 주위를 환기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우현은 이번 전시를 위해 25점의 차그림을 그렸다. 그림들을 가만 들여다보면 절로 웃음이 난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하도 차가 마시고 싶어 초의선사에게 부탁하고 이를 배편으로 건네받는 장면을 그린 ‘전다도(傳茶圖)’·초의선사가 소나무 그늘 아래 앉아 차 한잔을 음미하는 ‘초의대사 끽다도’·대나무숲에 앉아 차 한잔을 옆에 두곤 바둑삼매에 빠진 스님들을 그린 ‘한적(閑寂)’ 등 그림들은 저마다 얘깃거리로 넘쳐난다.

그림은 살아 숨쉬는 듯 생생하다. 오십 평생 닦은 필력으로 한 획 쓰윽 그으면 멀리 산이 펼쳐지고 물이 출렁인다.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놓은 듯 초의선사가 추사선생과 차 한잔을 나누는 전경이 아슴아슴하게 펼쳐진다.

또한 그의 작품은 무르익은 수묵화의 맛을 제대로 보여준다. 미술평론가 신항섭 씨는 우현의 작품을 가르켜 “그의 작품에는 가식이 없다. 손에 익은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가는 필치에는 도무지 억지도 없고 걸림도 없다. 이런 그림은 보는 누구에게나 편하게 다가온다. 그만큼 무르익어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고 평한 바 있다.

동양화에 구상·추상이 따로 있나?

우현 송영방. 그는 1960년대 한국화의 현대화를 추구했던 묵림회 멤버였으며 그 후 화단에 머물며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왔다. 그만큼 다양한 소재와 기법으로 산수화와 문인화를 그린 화가도 흔치 않다. 우현은 장르를 넘나들며 관객들을 품격있고 중후한 수묵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는 산수화와 문인화에 능할 뿐 아니라 누드화, 삽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골고루 편력하고 있다. 또 불화에도 관심이 많다.

우현은 화단에서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한국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는 구상과 추상을 구분하는 것이 소모적이라고 했다. 산수화 등의 한국화는 구상화지만 추상요소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구분하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동양미술의 추상성과 서양의 추상미술은 다릅니다. 서양의 추상화가 사물의 형태를 재구성·해석한 것이라면 동양의 추상은 사의(寫意)를 내포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대나무를 그릴 때 푸르게 그리지 않고 하늘과 물에 색을 입히지 않는 것은 대나무와 하늘, 물을 적확히 그리기보단 거기에 담겨진 뜻을 그리기 때문입니다. 즉 동양화는 리얼하게 사물을 표현하는 대신 뜻을 바탕으로 사물을 재구성함으로써 추상성을 내포한다는 말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묻다보면 좋은 그림

이미 그에게 장르는 별 의미가 없다. 우현이 추구하는 것은 ‘좋은’ 그림이다. 그렇다면 어떤 그림이 좋은 그림일까?
그는 “자신을 잘 나타낼 수 있는 그림이 좋은 그림”이라 말했다. 쉽고도 어려운 말이다.

“성철스님이 ‘자신을 알라’고 하셨지요. 언뜻 생각하면 쉬운 말이지만 자기를 아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자기만 알면 좋은 그림이 나옵니다.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를 고민하고 본질을 탐구하다 보면 저절로 하심이 되고 자연과 사물에 대한 경외심도 생깁니다. 어떻게 하면 한덩이 바윗돌에서도 세상 만물의 이치를 알고 자신을 알 수 있는지 고민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림이 되는거죠.”

그에게 향후 계획은 물었다. 그랬더니 껄껄 웃으며 답한다.
“계획은 무슨 계획이야. 그림 계속 그리면서 반성하고 사는 거지….”

김나령 기자 nrkim@jubul.co.kr



법정스님 인연 불교입문…생활 속 불법 깨달아

우현 송영방 씨는 어려서부터 어머니 손에 이끌려 절에 다녔다. 그때부터 그림쟁이 끼가 흘렀는지 부처님이 반개(半開)하고 가부좌를 튼 모습·사찰의 석등과 단청 등 그 유려한 모습에 넋을 잃고 쳐다보기 일쑤였다. 이후 불연(佛緣)은 법정스님으로 이어졌다.

“30년 전쯤 어느 출판사에 목차 컷을 그린 적이 있는데 법정스님이 그 삽화를 보시곤 연락을 주셨더군요. 마음에 든다 하시길래 선물로 드렸습니다. 그 후 소설가 정찬주 씨가 같이 법정스님을 뵈러 불일암에 가자고 하더군요. 계를 받으라 해서 나 같은 속인도 계를 받을 수 있다고 물었더니 괜찮다 하시더군요. 그래서 스님께 계를 받고 원공(圓空)이란 법명을 얻었습니다.”

법정스님과 맺은 인연으로 스님 책에 삽화도 여러 번 그렸다. 또 조계종립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학장을 역임하면서 불교와 한 층 더 가까워졌다. 불교의 심오한 경지를 알지는 못하지만 불교를 좋아한다는 우현은 생활 속 불교를 중요시 여긴다. 그가 좌우명처럼 여기는 선시가 있다. 중국 선승 부대사(傅大士,497~569)의 시다.

夜夜抱佛眠 朝朝還共起 起坐鎭相隨 語默同居止
야야포불면 조조환공기 기좌진상수 어묵동거지
纖毫不相離 如身影相似 欲識佛去處 只遮語聲是
섬호불상리 여신영상사 욕식불거처 지차어성시
(밤마다 부처를 안고 자고/ 아침마다 함께 일어나네/ 앉으나 서나 늘 따라다니고/ 말할 때나 안 할 때나 함께 있으며/ / 털끝만큼도 서로 떨어지지 않으니/ 몸에 그림자 따르듯 하는 구나/ 부처님 간데 알고자 하는가/ 단지 이 말소리 나는 곳 부처이로세)

송영방 씨의 아호는 우현이다. 우현(牛玄)은 십우도(十牛圖)의 ‘우’와 《도덕경》의 (玄之又玄 衆妙之門)’의 ‘현’에서 비롯됐다. 심우의 ‘우’는 진리를 의미하고 ‘현’은 아득하다는 의미이니 풀어 말하면 진리의 세계가 아득하다는 뜻.
그는 오늘도 화폭을 도구삼아 아득한 진리를 쫓아 끊임없이 정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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