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응오 | 2007/06/25 11:44

부여 무량사 찾아 마음 속진 씻어… 석조각 예술대학 설립이 꿈

많은 이들은 바위를 그저 돌로만 보지만 불모(佛母)는 바위에 숨어 있는 부처님을 본다. 따라서 손재주만으로는 바위를 불보살님으로 화현시킬 수 없다. 바위를 대할 때 석조각장의 마음에는 이미 바위처럼 굳건한 불심(佛心)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석공예 명장인 고석산 씨를 만나 정과 망치로 돌 위에 불심으로 새기는 석조각장의 길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주〉


고석산 명장의 작업실은 돌의 고장인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대천리에 자리하고 있다. 작업실을 찾았을 때 고 명장은 이문구 소설에 곧잘 등장하는 느리고 순박한 충청도의 말씨로 “먼 길 오셨슈”라며 맞이한다. 얼굴의 웃음 또한 순박하다. 고향을 물으니 “여기서 멀지 않아요”라고 답한다.

고 명장은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독산리에서 태어났다. 1968년 황교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석조각장의 길에 발을 디뎠다.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공부를 하고 싶었어도 빈한한 가정 형편 때문에 일찌감치 밥벌이를 해야 했다.

“어릴 적 엄니가 잡은 물것들을 지게에 지고 시장에 왔다가 처음으로 석조각장들을 봤죠. 무릎이 뚝 불거진 바지에, 찢어진 셔츠를 입고, 돌가루가 허옇게 머리에 눌러 앉은 게 영락없는 거렁뱅이 몰골이었습니다. 게다가 팔뚝에는 돌 조각이 튄 상처가 많았죠.”

어릴 적 그는 절대로 석수장이만큼은 되지 말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생부터 돌과 무슨 인연이 있었는지 석공이 되고 만다. 그의 고향은 전북 익산에 버금가는 돌의 고장이다. 익산지역에서는 장엄물을 조성하는 돌이 나오는 반면, 대천에서는 비석에 쓰는 오석이 나온다. 그가 까마귀처럼 검고 윤기가 나는 오석을 만지게 된 것은 아버지의 권유 때문이었다.

고석산 명장이 부조한 석조탱회.

아버지의 절친한 벗이 바로 석조각계의 명인인 김형돈 씨였던 것. 비록 힘은 들지만 식구들은 너끈히 먹여 살릴 수 있으니 석조각장이 되라는 게 아버지의 지시였다. 아버지의 심지를 굳히는 데는 고 명장의 자질도 한몫을 했다. 어릴 때 고 명장은 찰흙 빚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이런 고 명장의 손재주를 유심히 봤던 아버지는 아들이 석조각장의 자질이 있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고 명장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손에 망치와 정을 잡게 된다. 그는 석공예 기능인인 정종섭 씨의 문하에 들어가 석조각장의 길을 걷게 된다. 일이 고되다 보니 먹는 것만큼은 잘 먹었는데, 그럴 때마다 고 명장은 가족 생각이 났다고 한다.
“쌀밥을 먹을 때면 굶주리고 있을 형제들이 생각나서 목에 넘어가질 않았어요.”

어린 그에게 석공일은 매우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우선, 잠이 부족했다.
“정종섭 선생님 밑에는 10여 명의 제자들이 있었어요. 하루 일은 공구를 불에 달궈 정비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여름 때는 해가 일찍 뜨기 때문에 새벽 4시면 일어나야 했어요. 해가 뜨면 일어나 별이 뜰 때 잠이 드니 몸이 마르더군요. 새벽이면 선생님이 제 이름을 부르곤 했는데, 당시의 습관 때문에 지금도 누군가 이름을 부르며 소스라치게 놀라는 버릇이 있어요.”

당시에는 선·후배 간 관계가 매우 엄격해서 조금만 실수를 했다싶으면 엎드려서 각목을 맞았다고 한다. 고 명장에게는 몸과 마음에 멍이 가실 날이 없었는데, 특히 작업장 선배들 중에는 초등학교 친구들이 있어 더욱 맘이 아팠다고 한다. 몸이 힘들수록 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마음을 다졌다고 한다. 석조각 부문에서는 최고가 되자. 그게 바로 그의 다짐이었다.

정종섭 선생에게서 기초적인 석조각의 기술을 배운 후 그는 서울로 상경한다. 서울 종암동에 소재한 한 석공예 작업실에서 2년간 근무한 후 그는 망우리에 위치한 신진석재로 직장을 옮긴다.

그때부터 그의 손재주가 세상에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1973년 제8회 전국기능 경기대회 2위에 입상한 이래 그는 불교계에서 주최한 대회에서 잇따라 입상을 한다. 그가 불교미술에 조예를 갖게 된 데는 引導 이인호 선생의 영향이 크다. 이인호 선생과의 인연은 1979년 맺어진 이래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도 불교미술과 관련 궁금한 게 있으면 이인호 선생이 있는 전북 익산을 찾아간다고 한다.
1980년 제9회 불교미술 전람회 특선· 1981년 제10회 불교미술 전람회 우수상· 1982년 제10회 불교미술 전람회 입선 등 잇단 불교미술대회 입상 후 그는 잠시 현대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가 현대조각에 관심을 가진 까닭은 마음수련을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인체에 관심을 갖다가 차츰 추상조각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그가 현대조각을 하면서 가진 주된 화두는 윤회였다. 돌 속에 장구한 인연의 윤회를 담고자 노력했고, 때로는 돌 자체에서 윤회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현대미술 관련 대회에서는 잇따라 입상을 한다. 1983년 국제예술대전 동상을 시작으로 1986~1987년 현대미술대상전 우수상 및 현대미술 대상· 1986년~1994년 서울현대조각공모전 입선 및 특선· 1986년~1993년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1993년~1995년 충청남도미술대전 특선 및 대상· 1990년 중앙미술대전 입선 등 그가 받은 상들은 장식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다.

그가 현대미술을 관심을 갖고 공부한 끝에 깨달은 것은 석 조각이란 만들고자 하는 형상에 맞춰 억지로 돌을 깎는 게 아니라 돌 속에 있는 존재를 발견해야 한다는 진리였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은 후 그는 불상 제작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됐다.

그는 유명한 전국 사찰의 부처님을 알현하면서 부처님은 환경에 가장 적합하게 조성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깨달음은 그의 마음뿐만 아니라 손끝에도 배어 다양한 상호의 불상을 조성하게 된다.

고 명장의 작품인 묘림사 지장보살상.

이러한 노력 끝에 그는 1997년 대한민국 석공예 명장이 됐고, 충청남도미술대전 운영위원·충청남도 미술대전 조소부문 심사위원·충청남도지방기능경기대회 공예분과장 겸 석공예심사장 등을 역임했다.

또한 그는 석조각 역사의 전통을 잇기 위해 1999년 한국석조각협회(www.cssa.co.kr) (예전 이름 한국석조각연구회)를 창립했다. 한국석조각협회는 전국기능경기대회 입상자나 돌조각에 애착이 많고 우리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구성됐다. 그가 초대·2대회장을 역임한 한국석조각협회는 전국에 4개지부가 결성돼 활발한 활동을 갖고 있다.

고석산 명장의 향후 꿈은 석조각 예술대학을 설립하는 것이다. 이에 앞서 그는 우선 석공예교육원을 설립하고 그간 계획했던 석공예 교육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국제적인 조각 예술대학을 설립할 최고의 적지가 바로 보령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고 명장은 지난 2001년 7월 석공예 교육의 필요성에 관한 제안을 했으며, 이어 보령시 교육장에게 한 폐교의 활용방안으로 석공예교육원 설립을 건의하기도 했다.
그가 남긴 작품으로는 대구 동화사의 약사여래병풍석부조를 비롯해 해인사 길상암의 약사여래대불 등이 있다.
그는 심란할 때마다 부여 무량사를 찾는다. 보물 185호인 5층탑에 서서 탑돌이를 하고 나면 마음의 속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조성한 석불의 특징을 묻자 그는 “자신을 닮았다”는 선문답 같은 대답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보니 작업장에 모셔놓은 석불들이 어딘가 그를 닮았다. 그는 5종류의 망치와 10종류의 정으로 무형의 돌에서 유형의 부처님을 만드는 고 명장. 그의 바람대로 이 시대를 대표하는 석불을 조성하길 기대해본다.
글= 유응오 기자
사진= 이한규 국장




# 고석산 명장은?
● 불교미술대전 특선및우수상(80~81, 2004)
● 대한민국 석공예명장(97)
● 충청남도지방기능경기대회 공예분과장겸 석공예심사장
(98~2000)
● 전국돌조각경진대회 심사위원(99~2001, 2004)
● 전국돌조각경진대회 심사장(2002~2003)
● 한국석조각연구회원전(2001~2005)
● 인천지방기능경기대회 석공예심사장(2003)
● 국가기술자격 석공예기능사 92000011147호
● 국가기술자격 석공2급기능사 83406081349호
● 문화재수리기능사 석공667호
● 문화재수리기능사 석조각1303호
● 문화재기능인협회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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