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일 | 2007/12/17 11:26

신행모임을 마친 신도들이 조계사 산중다원에서 차를 마시고 있다.

직장인·신도 오가며 인드라망 같은 선근 인연 만들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항상 일상 생활에서의 일탈을 꿈꾼다. 하지만, 도심 속을 벗어나 자신만의 여유를 찾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추운 겨울 도심 속 사찰에서 쉽게 차 한 잔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전통다원들을 둘러봤다. 서울 도심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조계사와 봉은사 산중다원이 바로 그 곳. 전통과 현대를 절묘하게 조화시키고 있는 두 사찰의 전통다원에서 잃어버린 삶의 여유를 찾아보자. 〈편집자 주〉


도시 생활은 편리하지만 사람들을 육체적·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든다. 분명 경제적인 부를 쌓기에는 용이할 수 있는 생활이기도 하지만 결국 서로를 밟고 올라서기에 급급한 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간다.

최근 들어 사람들이 명상센터를 찾는 것은 이런 복잡한 생활에서 벗어나고픈 욕구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이 차(茶)이다. 조용한 다원에서 차를 한 잔하면서 자신만의 여유를 찾는 것이다. 유동인구가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종로와 강남 한복판에서도 이러한 여유를 찾을 수 있는 도심 사찰이 있다. 한국불교 일번지 종로 조계사와 도심포교의 일번지인 강남 봉은사가 바로 그곳.

강남과 강북 서울의 양쪽을 책임지고 있는 사찰인 조계사와 봉은사에도 ‘산중다원(山中茶院)’이라는 동명(同名)의 전통다원이 자리하고 있다.
추운 겨울, 동명의 다원에서 따뜻한 차 한잔으로 소소한 여유를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 직장인·신도들의 작은 쉼터- 조계사 산중다원

조계사 산중다원의 대추차.

조계사 산중다원은 제법 알려진 곳이다. 견지동 일대에는 외국기업의 찻집·카페들은 많이 들어섰지만, 전통다원은 드물기 때문이다. 또한 조계사의 산중다원은 그 역사도 제법 오래됐다. 1990년대 조계사 문화원의 개념으로 찻집을 연 것이 기원돼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조계사 산중다원은 사찰 뒤편 공양간 옆에 자리하고 있다. 고풍스러운 대문과 약간은 허름해보이는 ‘산중다원’이라 쓰여 있는 찻집 현판이 눈에 띈다.

찻집을 책임지고 있는 팽주(차를 다려주는 사람)는 김상곤(54, 법성심)·정혜숙(50, 여래심) 씨 두 명이다. 이 곳에서 제공되는 차는 쌍화·모과·대추·오미자·생강·유자차 등 전통차를 비롯해 녹차류·쥬스·즙·들깨죽 등 다양하다. 차에 곁들여 나오는 한과와 편강도 일품이다. 특히 편강은 달콤 쌈사름한 맛이 입맛을 자극한다.

다원에 들어서 팽주에게 차를 청하니 대추차 한 잔을 내왔다. 차를 내온 팽주 정혜숙 씨는 “대추차가 다원에서 가장 사랑 받는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쌍화차와 대추차 등 대부분의 전통차는 이 곳에서 손수 제작합니다. 녹차류는 쌍계다원에서 공수해오는 것입니다. 생마와 도라지·인삼을 갈아 만든 즙들도 손님들이 즐겨 찾으세요.”

조계사 산중다원의 내부 전경.

솔잎을 6년 넘게 숙성시켜 손님에게 제공하는 솔바람차도 조계사 산중다원의 일미. 청량하고 맑은 맛이 약간의 취기도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게 팽주의 전언이다.

도심에 있는 사찰인 만큼 찾는 사람들 대부분이 직장인들이 많다고 팽주 정씨는 전한다. 주로 점심시간으로 찻집을 찾는 직장인들 중 몇 몇은 이미 조계사 산중다원의 단골이란다. 정씨는 직장인들이 많은 이유 중 하나로 “아마도 차를 마시려면 신을 벗고 안으로 들어서야 한다는 조계사 산중다원의 특징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아침부터 점심까지 구두를 신고 일하려먼 얼마나 발이 피곤하겠어요. 이곳에서 구두를 벗고 두 다리 펴고 쉴 수 있잖아요. 또한 조계사 산중다원은 찻값이 저렴한 편입니다. 한푼이 아까운 직장인들이 저렴한 가격에 여유를 찾고 가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지요.”

직장인들도 많이 찾지만, 그만큼 신도들도 많이 찾는다. 신행모임을 마친 신도들이 찻집 안에서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운다. 또한 한 무리의 직장인들이 들어와 지친 발을 쉬어간다. 이들에게 조계사 산중다원은 즐거운 사랑방일 것이다.

봉은사를 찾은 신도들에게 팽주 김득순 씨가 차를 내오고 있다.

# 빽빽한 빌딩 숲에서 찾은 오아시스- 봉은사 산중다원

봉은사 산중다원에서 제공되는 약차.

서울 도심 한복판 그것도 최첨단 시설이 모여 있는 강남에 이렇게 큰 사찰이 남아 있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강남의 최신 건물들 사이에 역사의 흔적이 느껴지는 ‘봉은사’는 여러가지 의미로 보는 이로 하여금 반가움을 자아낸다. 봉은사는 신도뿐만 아니라 관광객들도 많이 찾지만, 일주문 앞에 작은 찻집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생협과 응향각(불교용품 판매점) 사이에 있는 봉은사 산중다원은 전통적이라기 보다는 현대 쪽에 가깝다. 찻집 안으로 들어서면 원목으로 된 차 테이블과 의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작지만 정겨운 느낌이다.

비싸지 않은 가격에 좋은 차를 공급하며, 스님들이 손수 만드신 차들도 이곳에서 맛볼 수 있다. 흔히 생강을 저며서 만드는 생강차와는 달리 이곳에서의 생강차는 생강을 갈아서 만들었다. 그래서 우러나는 맛이 더욱 진하며 매운 맛이 덜해서 마시기에는 그만이다.

봉은사 산중다원의 입구.

대추차 역시 대추를 직접 갈아 만들기는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맛이 난다. 그 이유로는 생강·구기자·계피·감초 등이 함께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봉은사 산중다원을 책임지고 있는 팽주 김득순(58, 정덕화) 씨는 말한다.

다원에서 제공되는 약차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전통차. 10가지가 넘는 약재를 한데 넣고 달인 약차는 차라기보다는 약에 가깝다. 약간 쓴맛이 나기는 하지만, 그 위에 푸짐하게 올려진 고명이 때문에 그리 쓰지는 않다. 이 약차를 마시고 감기기운이 떨어졌다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뿌듯하다고 김 씨는 말한다.

봉은사 산중다원은 신도들이 대부분 이용하는 곳이지만, 아는 외부인들은 이곳을 자주 찾는다고 팽주 김 씨는 전한다.
은은한 향이 일품인 차 한 모금, 거기에다 은은한 명상음악까지 곁들여지면 산사에 오른 것이 부럽지 않지 않을 정도다.
신중일 기자 bono98@jub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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