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일 | 2008/02/18 16:27

‘현자의 돌’ 찾아 떠난 형제 ‘일념즉시무량겁’ 깨닫다

연금술이라는 서양 중세의 신비주의 소재를 차용해 눈길을 끈 〈강철의 연금술사(2003, 원작 아라카와 히로무)〉는 불교의 연기사상과 화엄사상이 절묘하게 녹아 있는 작품이다. 또한 ‘불로불사’라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에 대한 비판은 다양한 해석의 지평을 열어준다. 국내 케이블 방송에서도 방영된 판타지 애니메이션 〈강철의 연금술사〉에 담긴 불교적 색채를 찾아봤다.〈편집자 주〉


“가져가 버렸어….” 한 소년이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다리를 부여잡고 울부짖는다. 바닥에는 서양 신비주의 마법에서 보일 법한 마법진이 펼쳐 있다. 그 안에는 사람이 아닌 형상의 무엇이 자리하고 있다.

2003년 충격적인 오프닝으로 화제를 모은 애니메이션이 바로 〈강철의 연금술사〉이다. 밝고 명랑하고 코믹스럽기까지 한 소년만화의 정석을 산산조각 내버린 〈강철의 연금술사(鋼の鍊金術師, 원작 아라카와 히로무)〉는 TV시리즈가 끝난 현재까지도 많은 매니아 층을 양산하며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아라카와 히로무의 원작인 이 작품은 2001년 일본 만화잡지〈월간 소년 간간〉에 현재까지 연재되고 있으며, 2003년에는 TV 애니메이션(감독 마츠모토 세이지)으로도 제작돼 마이니치TV에 51부작이 방영됐다. 종영 후에는 극장판 〈샴발라를 정복하는 자〉가 개봉되기도 했다.

〈강철의 연금술사〉는 어린 주인공이 악과 맞서 싸우는 판타지라는 ‘소년만화’의 공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의 내용은 ‘소년만화’의 장르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세기말 분위기와 충격적인 결말로 세간의 화제가 된 〈에반게리온〉과도 흡사한 구조이다. 또한 작품이 담고 있는 사상적 기반을 비롯해 죽음의 대한 성찰과 인간의 탐욕에 대한 비판 등은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한다.

먼저 줄거리를 살펴보자. 에드워드 엘릭(이하 에드)과 알폰스 에릭(이하 알) 형제의 아버지는 뛰어난 연금술사였으나 이들이 어렸을 때 집을 나가고, 어머니는 홀로 두 형제를 키운다. 그러나 어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전염병에 걸려 숨지고, 형제는 연금술을 배워 어머니를 되살리기 위해 금기시 되는 ‘인체연성’에 도전하려 한다.

결국 스승을 만나 연금술을 배운 형제는 어머니를 연성해 내지만 실패로 돌아간다. 실패의 대가는 컸다. 연성의 실패로 인해 형 에드는 한쪽 다리와 팔을 잃게 됐고, 동생 알은 육체를 잃어버리고 혼만 남게 된다. 형제는 국가연금술사가 돼 자신들의 몸을 찾기 위한 기나긴 여정을 시작한다.

<강쳘의 연금술사>의 주요 등장인물. 왼쪽으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주인공 에드워드 엘릭, 스승 이즈미, 동생 알폰스 엘릭, 기계장구사 윈리 록벨.

〈강철의 연금술사〉를 이끌고 나가는 가장 중요한 축은 연금술에 대한 것이다. 서양 신비주의 중 하나인 연금술사(alchemist)란 새로운 소재를 차용한 것이 작품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사상은 불교의 연기법을 관통한다.

실제로 주인공 형제에게 연금술을 가르치는 스승 이즈미는 인체연성을 묻는 형제에게 이렇게 답한다.
“살아있다면 언젠가 육체는 다해 흙으로 돌아간다. 그 위에 풀이 나고 꽃이 피게 되며, 영혼은 추억이라는 양식이 돼 사람들 마음 속에 계속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흐르고 순환하고 있다. 사람의 삶 또한 그렇다.”

작품에 나오는 연금술은 순환이라는 대자연의 섭리를 강조한다. 인간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생물이면 가지고 있는 ‘생로병사’라는 순환의 고리와 법칙을 이해하고 물질을 재구축하는 것이 연금술이라는 것이다.

이는 화엄사상과도 맞닿는다. 스승이 형제에게 던진 ‘하나는 전체, 전체는 하나’라는 화두는 작품 내내 강조되는 텍스트이다.

작품에서는 연금술을 과학으로 치환해 이야기를 이끌어 낸다.(실제 연금술은 화학이라는 과학 분야를 낳게 하는 모태 역할을 했다.) 과학이라는 것은 세상의 관계와 운동을 양(量)의 관계로 파악해내는 방법이다. 하지만 근대 과학적 사고는 눈에 보이는 현상세계만을 파악하기 때문에 테크놀로지의 발달을 가져왔지만 더불어 인류를 자연공동체에서 떼어 놓는 역할도 했다.

세상을 이해하려면 자기 자신과 그 관계를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만물의 순환은 자연이라는 고리에서 이뤄지지만 ‘나’라는 주체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결국 작품에서의 연금술은 우리 자신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존재하고 죽어가는 진리를 알아 가는 과정이다.

금기를 범한 형제의 여정은 주로 ‘현자의 돌’을 찾기 위해 이뤄진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다는 이 돌을 위해 많은 인간들이 불나방처럼 뛰어든다. 결과적으로 완벽한 ‘현자의 돌’은 없었다. 설사 얻을 수 있다해도 한 나라의 국민들이 희생될 정도의 ‘몫’이 필요했다. ‘현자의 돌’은 결국 인간이 가진 탐욕이 불러온 허상이었던 것이다.

형제의 여정의 시작도 죽은 엄마를 되살리기 위한 순수한‘탐욕’으로 시작됐다.
스승마저 금기한 ‘인체연성’이라는 자연 법칙에 대한 도전은 마치 19세기 메리 셸리의 괴기소설 《프랑켄슈타인》과 흡사하다. 젊은 과학자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어머니를 잃은 충격 때문에 인간의 생로병사라는 자연법칙에 강한 의문을 갖게 되고 급기야 그 법칙에 도전하게 된다. “인간을 죽지 않게 하겠다”라는 것의 그의 목표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그의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는 것이 입증된다.

〈강철의 연금술사〉는 프랑켄슈타인의 또 다른 변주곡이다. 어머니를 잃은 형제는 생로병사의 법칙에 도전해 어머니를 부활시키려 한 ‘탐욕’으로 인해 자신들의 육체를 잃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를 되돌리기 위한 다른 ‘탐욕’을 가지고 형제는 여행을 시작한다.

그들의 여정에서 적으로 등장하는 호문쿨루스 집단도 ‘불로불사’라는 탐욕을 채우기 위해 움직였다. 호문쿨루스들은 인간이 되기 위해 ‘현자의 돌’을 원했고, 그들을 조정하는 단테라는 인물은 돌을 이용해 자신의 영혼을 남의 육체에 전이해 영겁의 세월을 살아왔다. 호문쿨루스들의 몸에 새겨져 있는 우로보로스 문양(자기의 꼬리를 입에 물고 있는 뱀. 본래 의미는 순환하는 시간이다)은 작품에서 탐욕과 악업의 고리가 영겁의 순환을 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단테가 남의 육체를 취하면서까지 추구했던 영원한 생명도 자신의 영혼이 영겁의 세월을 지나오면서 마모돼 더 이상 생명을 연장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영원한 것은 없으며, 인간의 탐욕이 덧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형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에 가서야 자신의 몸을 잃어가면서 되찾고자 했던 어머니는 절대로 되살릴 수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며, 그들이 굳건히 믿고 있던 등가교환의 원칙도 본디 성립하고 있지 않았다. 형제가 가졌던 순수했던‘탐욕’도 ‘등가교환’이라는 그들만의 원칙도 모두 덧없는 것들이었다.

자연은 가혹할 정도로 냉정하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다른 생명에게 희생을 요구해야 한다. 하지만 자연은 선악의 분별을 넘어서 삶과 죽음이라는 순환 고리를 통해 존재한다. 우주 만물은 그물처럼 연결된 가운데 무시무종하며 순환한다는 것이 바로 형제의 여정에서 보여지는 깨달음이다. 이는 형제가 처음 연금술을 배우며 어렴풋이 깨닫는 진리였다.

진리는 멀리 있지 않았다. 바로 곁에 있었다.
신중일 기자 bono98@jubul.co.kr


“한 알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기 위해
“손바닥 안에 무한을 붙들고
“한 순간에 영원을 붙잡아라.”
블레이크의 〈순수의 전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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