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일 | 2008/12/09 10:36

‘타임 리프’능력이 주어진 한 소녀의 성장통

시간을 거스러 올라가 자신의 일생을 바꾼다. 소위 ‘타임머신’이나 ‘타임리프’ 같은 소재는 이미 영화나 만화에서 많이 쓰이는 SF 소재이다. 최근에는 이런 과거로의 회귀 등을 다룬 영화들이 심심치 않게 개봉됐다. 리모콘 하나로 자신의 인생을 리와인드·빨리 감기를 했던 ‘클릭’이나 특수한 능력으로 자신의 과거를 바꾸는 ‘나비효과’까지 다양하다. 특히 이런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는 복잡한 시간론을 바탕으로 해 여러 가지 지평에서의 해석이 가능하다. 이 같은 시간여행을 소재한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이 2006년에 개봉돼 눈길을 끌었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바로 그것. 소녀의 성장통이 담긴 애니메이션에서 담긴 불교적 사상에 대해 알아봤다.

(차아키, 좌) "미래에서 기다릴게" (마코토, 우) "응, 금방갈게. 뛰어 갈게." 노을 지는 강변에서 소년과 소녀는 시간을 뛰어 넘는 감정을 확인한다.

당신은 한번이라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는가? 혹여 당신에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능력이 한 번이라도 주워진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필자는 두 말없이 복권 당첨 번호를 알아서 과거로 넘어갔을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과거나 미래로의 여행을 꿈꾸는 것은 희망과 회한 때문이다. 이런 상상력의 발로는 ‘타임머신’이나 ‘타임리프’등을 만들어 냈고, 무수한 영화나 만화의 소재로 사용됐다.

어찌보면 이제는 식상해져서 누구도 손대지 않는 소재인 시간여행을 다시 차용해 호평을 받은 애니메이션이 있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2006년 작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바로 그것. 식상해져버린 소재인 시간여행을 감독은 여고생을 주인공으로 삼아 밝고 유쾌하게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마코토는 달리면 시간을 뛰어 넘을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 그래서 제목도 '시간을 달리는 소녀'다.

본래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1965년 작가 쓰쓰이 야스타카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이후 1983년 오바야시 노부히코 감독의 동명 실사영화로 만들어진 이미 일본에서는 유명할때로 유명해진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방출된 ‘비운의 인물’호소다 마모루가 감독 맡아 특유의 유머 코드로 위트있게 풀어내 원작과 실사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매력을 가지게 됐다. 실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이 작품으로 지브리의 〈게드전기〉를 보기 좋게 꺽고 가장 주목받는 신인 감독으로 발돋움한다.

우연치 않게 ‘타임 리프’의 능력을 가지게 된 한 여고생의 좌충우돌 성장기인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줄거리를 살펴보자.

곤노 마코토는 쾌활한 열일곱살 소녀다. 등굣길 산들바람은 단발머리를 희롱하고 턱걸이로 지각을 면해도 마냥 좋기만 하다. 하지만 일본어로 ‘나이스 데이’라고 불리우는 7월 13일은 다르다. 아침부터는 난데없는 쪽지 시험에, 가사 시간에는 실수로 불까지 냈다. 친구와 한탄하며 걷는 도중에는 왠 덩치가 날아와 자신을 뭉겠다. 그리고 방과 후 과학실 구석에서 호두처럼 생긴 괴상한 물체 위로 넘어져 신비한 비전을 본다. 그나마 친구 고스케·치아키와의 야구 연습만이 그날의 유일한 낙이다.

그러나 진짜 사고는 철길 건널목에서 일어난다. 가장 재수가 좋다는 ‘나이스 데이’에 내리막길에서 갑자기 자전거 브레이크가 고장이 나버렸다. 멈출 수 없는 상황에서 그대로 마코토는 기차와 부딪힌다. “설마 죽겠냐 했는데 죽는구나.”
다음 순간 마코토는 자기가 시간을 뛰어넘어 살아 있음을 발견한다. 신바람이 난 소녀는 13일의 실수들을 바로잡고 노래방 시간을 늘리고 저녁식사 시간에는 철판구이를 먹은 날짜로 돌아간다.

처음 마코토의 상의를 받고 “네 또래 여자아이들에게는 가끔 있는 일이야”라고 안심시켰던 독신녀 이모는, 이즈음 “그런데 네가 이득 본 것만큼 손해 본 사람이 있지 않겠니”라는 준엄한 교훈을 깨우쳐준다.

시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가진 마코토는 자신의 실수들을 만회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것은 다른 인과의 시작이었다.

이모의 말대로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했던 행동들이 더욱 꼬여 돌아온다. 고스케가 하급생의 고백을 받은 오후, 치아키는 돌연 “우리 사귈래”라고 묻는다. 당황한 마코토는 몇번이고 시간을 되돌려 없었던 일로 만들지만, 막상 치아키가 다른 소녀의 접근에 들뜨자 희미한 통증을 느낀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시간’이다. 제목 그대로 달려서 시간을 뛰어 넘는 소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소녀가 시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막 가졌을 때에는 실수를 만회하고 먹고 싶은 것도 먹기도 했다. 하지만 곧 다가오는 재앙은 내가 아닌 타인에게 돌아가거나 아예 다른 요소가 돼 돌아온다.

불교의 연기사상은 시간을 이시적(異時的) 상호의존성과 동시적(同時的)상호의존을 두루 지니고 있다고 설명한다. 전자는 원인에 의해 결과가 발생하는 것이고, 후자는 동시에 서로의 원인과 결과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연기사상은 시간이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즉, 시간이란 상호관계 속에서 존재하므로 고정된 실체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불교적 시간관은 작품의 마지막 부분, 화엄사상의 ‘일념즉시무량겁’으로 확장된다.
치아키가 미래에서 온 사람인 것을 알게되면서, 마코토는 그를 ‘좋아했다’라는 감정을 인식한다. 마코토는 치아키가 미래에서 온 이유가 문화재 수복사인 이모가 복원하고 있던 그림 때문이라는 듣게 된다.

인과의 끝은 친구의 죽음과도 연결된다. 하지만 이는 다른 인과와의 시작이기도 했다.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린, 자신이 치아키의 ‘호두 같이 생긴 무엇’을 가지기 전으로 돌아간 마코토는 치아키를 다시 미래로 되돌린다. 그리고 약속한다. 그 그림을 미래에서도 볼 수 있게 하겠다고. 그 둘 사이에는 서로의 원인과 결과가 있게 해줄 매개체가 생겼다. 마코토에게는 앞으로 나갈 꿈을, 치아키에게는 추억이라는 연결고리가 생긴 것이다. 몇 겁을 뛰어넘을지 모르는 시간을 한숨에 이어주는 것이다.

노을지는 강변에서 서로에게 “미래에서 기다릴게”, “응 갈게. 달려갈게”라는 말을 전하는 장면은 영겁의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마코토는 다시는 ‘타임 리프’를 할 수없다. 다만 흐르는 시간 속에 자신의 성장·미래·사랑을 향해 천천히 달려가며, 여여(如如)히 살아가는 하루 하루의 소중함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아무 의미 없었던 시공간의 초월보다 몇 배 더 가치를 따질 수없는, 시간이 마코토에게 준 선물이다.

유한한 육체를 극복하는 법은 기억되거나 추억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당신은 누구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습니까?
신중일 기자 bono98@jubul.co.kr

작품의 마지막 장면. 이제는 하루하루를 여여히 살아가하는 마코토. 그녀는 이 같은 소소한 일상에서 삶의 본질을 깨달아 간다.

Copyright ⓒ 주간불교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