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재에서 나비춤을 추는 스님들.

8시간 동안 장엄하게 시연된 영산재
영산재는 대중의 소통이 매우 필요

잘 다듬어진 범패소리는 언제 들어도 편안하고 장엄하다. 영산재의 시작을 알리는 타종소리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타종은 사찰내의 대종을 치는 의식으로 종과 목어, 운판, 북의 사물을 침으로써 불교의식의 봉행을 알리는 신호로 삼는다.

현충일 아침 10시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이 전국에 울려퍼지는 시각. 신촌 봉원사 염불당 앞마당에는 대형 괘불이 내걸리고 야단법석이 펼쳐질 모양새를 갖춘다.

올해로 24회째를 맞이하는 봉원사 영산재는 과거 단오에 모셔져 오던 것을 2007년부터 현충일로 옮겨 시연되면서 대중 친화적으로 바뀌는 등 많은 변화를 겪는다.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을 기리고 추모하는 성격이 가미된 것도 대중과 더 가까이 소통하는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영산재 기능보유자인 구해스님은 “불교문화의 정수인 영산재는 한국인의 정신적 기반인 조상숭배와 호국불교에 깊숙이 뿌리내려 각인되어 있을 뿐 아니라 나라 안의 크고 작은 재난이나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마다 원만 성취를 바라는 국민들의 뜻을 받들어 여법하고 장엄하게 봉행돼 왔다”며 대중과의 소통이 매우 필요함을 지적했다.

이 때문인지 현충일이 되면 많은 구경꾼들이 봉원사를 찾는다. 특히 불교문화의 최고봉임을 자타가 공인하는 만큼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모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수많은 카메라의 움직임은 공연하는 스님들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북돋아 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불볕이 내리쬐는 봉원사 염불당 앞에서 공연하는 스님들의 어려움은 미루어 짐작이 된다.

영산재는 불교에서는 가장 큰 문화행사이고 원칙적으로는 몇 일에 걸쳐 봉행된다. 하지만 공연이 가미되면 시간은 단축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8시간에 걸쳐 진행되니 시연하는 사람으로서는 참으로 지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수행으로 생각하고, 정진이라고 여기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일일 듯 하다.

이 같은 영산재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시는 영산회상의 모습을 형상화하여 보여주는 것으로, 영산회상의 제불보살에게 공양을 올리는 의식이다.

그리하여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이 다함께 진리를 깨달아 이고득락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의의가 있다. 그러므로 영산재는 단순한 공연이 아닌 장엄한 불교의식임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즉, 삶과 죽음으로 갈라진 우리 모두가 불법 가운데 하나가 되어 다시 만날 것을 기원하며, 부처님 전에 행하는 최대 최고의 장엄한 불교의식으로 봉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영산재 의식의 절차는 우선 의식도량을 상징화하기 위하여 야외에 영산회상도를 내어 거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렇게 야외에 내거는 불화를 괘불이라고 하며 괘불을 내어 거는 의식을 괘불이운이라고 한다.

괘불이 이운되면 영산회상의 상징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불교가 우리 나라에 들어오기 전에는 유명 산천을 성지로 골라 그곳에서 제사를 지내고 중요한 일들을 논의하였으나, 불교수용 이후에는 중요한 행사를 행할 장소를 성역화하는 지혜를 발휘하였는데, 괘불이운은 그 좋은 예의 하나이다. 이운이 끝나면 여러 가지 예를 갖추어 불보살에 귀의정례하고 소망을 사뢰며 그 성취를 기원하게 된다.

영산재는 괘불이운으로 시작

일단 밖으로 모셔진 다음에는 괘불 앞에서 갖는 의식을 통해 도량은 더욱 신성하게 된다. 그 의식은 의식문에 의한 범패와 나비춤 천수바라 등 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의식의 설단형식은 야외에 내어 건 영산회상도를 중심으로 의식도량이 장엄되어진다. 괘불의 앞은 상단이라 하고, 중단은 왼쪽으로 의식도량을 옹호하게 될 신중단이고, 하단은 오른쪽으로 제사드리는 영단이다.

단을 구성하면 영산재의 준비가 끝나는 것이다. 다음으로 의식을 집행할 스님의 진용을 정하는데 이것을 용상방이라고 한다.

재의식을 증명하는 증명법사, 설법을 맡는 회주, 의식의 총지휘격인 법주, 범패와 의식무용 및 그 반주 등을 맡는 어산·범음·범패승, 그리고 종치는 일을 맡아보는 종두, 북을 치는 고수가 정해진다.
그리고 의식진행에 있어서 필수적인 법악기 담당인원은 태징 1인, 요령 1인, 바라 1인, 삼현육각 6인, 범종 1인, 호적 2인, 나비춤 2인 혹은 4인으로 짜여진다.

첫 의식은 신앙의 대상인 불보살과 재를 받을 대상인 천도받을 영가를 모셔오는 의식부터 시작한다. 이를 시련이라 한다. 시련이란 신앙의 대상 또는 천도를 받을 대상을 절 밖에서 모셔오는 영접의식이다.

이 시련은 행렬의식으로 행하는데, 그 행렬에는 나무인로왕보살번기를 선두로 여러 영기·청사초롱·일산 등이 따른다. 행렬음악으로 삼현육각·범패·나무대성인로왕보살을 창한다. 인로왕보살은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한다는 신앙적 기능을 지닌 보살이다. 시련행렬이 괘불 앞의 의식단 앞에 이르면 잠깐 정좌하였다가 앞에서 말한 제단마다 차례로 권공예배하고 소원을 아뢰며 불보살의 가피를 기원하게 된다.

행렬의식인 시련

이것이 끝나면 권공의식을 행하게 되는데, 권공의식이란 제물을 올려 권하고 소원을 아뢰며 가피를 비는 것이다.

권공의식의 대체적인 절차는 거불, 보소청진언, 유치청사로 신앙의 대상을 청하게 된 이유를 아뢰고 자비를 베풀어줄 것을 발원하고 공양을 받아줄 것을 권한다.

이렇게 하여 불보살을 의식도량에 초청하고 나면 환희심을 일으켜 찬불의례를 행한다. 찬불의례는 불보살이 강림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듯이 태징을 치고 호적을 불고 꽃을 흩뜨리면서 향화청·산화락 등의 범패를 부르고, 한편에서는 바라춤을 추어 긴장감과 환희심이 뒤섞이는 가운데 성대한 일대 환영식전이 마련된다.

이렇게 권공의식이 끝나면 이제 재를 개설한 사람들의 보다 구체적인 소원을 사뢰게 되는 축원문이 낭독된다. 재를 연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 시간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축원문이 법주에 의하여 낭독되고 있을 동안 개설자인 신도들은 온갖 정성을 다하여 불단에 분향예배하게 된다.

이와 같은 본의식이 끝나면 마지막으로 회향의식이 거행된다. 의식승을 선두로 모든 참가자가 의식도량을 열을 지어 돌면서 독경 등을 행한다. 회향의식이 끝나면 청하였던 대상을 돌려보내는 봉송의례를 행함으로써 영산재는 끝난다.

불교공양 예법인 식당작법

식당작법은 불교식 공양 예법이라 할 수 있는 바, 영산재에서는 식당작법을 통해 공양의 공덕을 일깨우는 의례를 행한 다음에야 비로소 당해영가로 하여금 재물을 받아 들이게 하는 제사의례인 상용영반을 행하는 점, 영가제사에 선행하여 식사의례가 첨가되는 것이 상주권공재 등과 다르다.

영산재는 이처럼 복잡한 절차를 엄숙하고 장엄하게 행하는 전통의식이고 세계인들의 관심도 높은 만큼 우리 국민들도 더 많은 관심과 성원을 보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