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선 | 2012/07/09 16:48

성철 큰스님 수행도량 4차 순례지 범어사. 26세 약관의 나이에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비구계를 받은 곳이다.

해인사에서 동산 큰스님으로부터 성철이라는 법명을 받고 출가사문의 길로 들어선 후 범어사 금어선원에서 하안거 한철을 보냈고, 원효암에서 홀로 한철안거를 하는 등 깨달음을 얻기 위한 본격적인 수행 길로 들어 선 것도 이곳이다. 

역사적으로 많은 고승대덕을 배출한 범어사는 의상대사를 비롯해 원효대사, 표훈대덕, 낭백선사, 명학스님과 근대에 경허선사, 용성선사, 성월선사, 만해한용운선사, 동산선사 등 당대 고승들이 수행 정진한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으로 신라 문무왕(678년)때 의상대사가 세운 화엄십찰의 하나다. 

이른 새벽부터 서울을 출발한 순례단은 6시간을 내달린 뒤에야 금정산 범어사에 도착했다. 푹푹 찌는 더위에 숨 돌릴 겨를도 없이 곧바로 공양간에서 반가운 인사를 나눌 정도로 주어진 시간이 촉박했다.
설법전에서 가진 무비스님 특별법문은 그나마 고행여정에서 한줄기 단비를 만난 것과 같이 고단함이 이내 가셨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전국에서 운집한 순례단을 반갑게 맞아준 무비스님은 해인사에서 한 철 성철스님을 시봉했다며, 그 당시 서릿발 같은 큰스님의 모습이 어른거리기만 해도 피해갈 정도로 무서웠다고 회상했다. 오죽 하면 가야산 호랑이라는 별칭을 붙였을 정도다. 형형한 눈빛과 눈썹 그리고 굵고 힘찬 음성이 마치 산을 뒤 흔드는 듯 해 붙여진 이름이다.  

 

무비스님은 성철 큰스님을 한국불교사에 전무후무한 인물이라고 자평했다. 앞으로 성철 큰스님 같이 훌륭한 선불장(選佛場)이 나올 수 없다고 단언했다. 특히 ‘순례단 법요집’에 수록된 성철 큰스님의 불기 2530(1986)년 부처님오신날 법어 ‘생신을 축하 합니다’를 직접 낭송했다.

“교도소에 살아가는 거룩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술집에서 웃음파는 엄숙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중략>

설법전의 장엄한 목소리가 무더위와는 비교가 안됐다. 무비스님의 특별법문은 “부처님의 팔만사천 법문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담겨져 있다”면서 “성철 큰스님의 봉축 법어는 부처님 교설의 완성이다. 이 이상 더 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다”고 했다.

스님은 “성철 큰스님 가르침은 인간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살자는 뜻”이라며 “‘당신은 부처님입니다’라는 뜻이 이 짧은 법어에 다 담겨 있다”고 했다. 술집에서 웃음을 파는 여염집 여인네,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죄수들에게도 불성이 있다는 것이다.

법화경 제20 상불경보살품 ‘당신은 반드시 부처가 될 수 있다’라고 누구에게나 예경을 한 상불경보살도 이와 같다. 성철 큰스님도 상불경보살과 같이 어떠한 비난을 받을지라도 그 사람을 ‘항상 업신여기지 않고’ 존경하며 예배하는 보살의 마음을 내고 있는 것이다.

순례단에게 성철 큰스님의 수행일화를 들려주고 있는 증명법사 원택스님은 큰스님께서 범어사 내원암에서 용성스님을 시봉한 얘기를 자주했다면서 할아버지뻘인 용성스님은 누구를 봐도 ‘선생’이라고 불렀는데 유독 손자뻘인 자신에게 ‘성철수좌, 성철스님’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이상하게 여긴 성철스님이 그 까닭을 물었고, 용성선사는 “스님이라고 부를 만한 중이 있어야지. 그런데 너를 대하니 스님이라고 부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참선 정진 열심히 하라”면서 서울 대각사로 함께 갈 것을 요구했다. 그만큼 성철스님의 기백과 깨달음을 향한 구도열기가 대단했음을 미뤄 짐작케 한다.
성철스님은 마지못해 용성선사를 따라 부산역까지만 배웅하고 도망쳤고, 훗날 큰스님은 당시 일을 회상하며, 노장스님을 따라 서울로 가면 수행은 커녕 시자노릇만 할 것 같아 열차에 가방을 실어주고 줄행랑을 쳤다는 것이다. 

  

         
범어사에는 은산철벽을 부수기 위해 젊은 수좌들이 금어선원에서 용맹정진을 이어나갔지만, 성철스님의 눈에는 수행의 양이 차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스님은 젊은 수좌들과 1주일 장좌불와 용맹정진 내기를 하는 등 탁마에 가일층 분발하기 위해 종용을 했다. 결국, 잠을 못잔 수좌들이 서로 예민해졌고, 사소한시비로 싸움이 일어나는 등 사단이 벌어졌다. 급기야 동산스님이 성철스님을 불러, 쉬어가면서 공부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하지만 스님은 아랑곳 하지 않고 원효암과 내원암에서 쉼없는 정진을 이어갔다.

순례단은 금어선원에 입방한 스님들이 하안거 중이라, 산내 암자인 내원암으로 향했다. 성철스님이 용성선사를 시봉했던 당시의 모습은 간데없고, 수행정진 한 곳도 미륵전으로 변했다. ‘제일선원’이라는 편액만이 덩그라니 걸린 채 입방 중인 스님들을 찾아 볼 수가 없다.

내원암에서 청련암으로 내려오는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그 옛날 용성선사와 성철스님이 포행하던 오솔길을 벗삼아 법향에 빠져들었다.
이재우 기자

※ 5차 순례사찰 경남 양산 통도사 백련암,
7월 21일(토요일)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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