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정이 있겠습니다.”

고우스님의 백일법문이 벌써 4회째를 맞이하고 있지만 진도는 전혀 나가지 못하고 있다. 10회 강좌로 계획된 것이기에 중반쯤 진도가 나가야 하는데 아직도 서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고우스님의 법문은 계속 똑같은 내용을 반복하고 있다. 스님께서 가장 많이 자주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이번 강좌의 핵심일듯하니 지금까지 하신 것 만으로도 충분한지도 모르겠다.

항상 말씀하시기를 “무아와 공을 이해하면 그것이 곧 중도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도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으니 무아이고, 무아이니 나다 너다 구별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리고 공은 손과 같은 것이니 손바닥을 보면서 손등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공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이처럼 삼라만상이 무아이고 공이라는 것을 알면 중도를 알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말씀으로 보아도 부처님이 중생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수행하여 스스로 체득해야 하리라. 그래서 불교는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종교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이해는 되는데 수행이 짧으니 항상 남의 말만 할 뿐 나의 말을 하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입정이란?

조금전에 입정이라고 했는데, 이는 들입자 고요할 정자를 말하는 것으로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힌다는 뜻이다. 마음이 고요해지면 모든 번뇌가 사라지고, 분별하는 마음이 없어져 나다 너다 하는 구별이 없는 상태가 되는데 이를 입정이라 한다. 이렇게 고요한 마음으로 법문도 듣고 강의도 들어야 하기 때문에 법회전에 입정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앞서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다”라고 정리한바 있다. 그럼 부처님을 무엇을 깨달았느냐, 바로 우리가 방금 입정했던 내용을 깨달은 것이고, 그러한 깨달음으로 인해 중도는 저절로 알게된 것이다.
중도를 알고 중도를 바탕으로 생활하면 너무도 행복하다. 이 때문에 이것을 다른사람에게 알려주어 그 사람도 행복하게 만들고, 다른분들에게도 알려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도록 만들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골고루 잘살게 되는 것, 그리하여 당신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요즘말로 사회화, 생활화이다. 중도를 깨닫는 것은 개인, 사회, 대한민국을 모두 행복한 나라로 만들고 세계도 그렇게 하자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중도를 알면 저절로 그렇게 된다. 살다보면 지치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중도를 알면 사는 것이 행복하고, 즐겁고,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중도가 불교의 핵심이고 살아가는 방법 중에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덕산스님의 깨달음

덕산스님이 중도를 표현한 얘기를 해보자.

〈금강경〉에 능통했던 덕산스님이 서촉에 있었다.

당시 남방에서 교학을 무시하고 오직 견성성불만을 주장하는 선종의 무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분개하여 평생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 〈금강경소초〉를 짊어지고 떠났다.

가다가 점심 때가되어 떡을 파는 노파에게 떡을 달라고 하자 “묻는 말에 대답하면 떡을 주겠다”하기에 그러자고 했다.

“금강경에 ‘과거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 마음도 얻을 수 없다’고 했는데 어느 마음에 점심을 하시려 하십니까.”

이 돌연한 질문에 덕산스님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노파에게 큰스님의 거처를 묻고 용담원의 숭신선사를 소개받았다.

용담을 찾은 덕산스님이 “용담이라고 들었는데 와보니 용도 없고 못도 없군요”라고 하자 숭신스님이 “참으로 자네가 용담에 왔구만.”하고 응대했다.

그러자 또 덕산스님을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때부터 숭신스님 밑에서 공부 했는데 하루는 밤이 깊도록 공부하다 돌아가려고 방문을 여니 너무 어두웠다. 그러니 숭신스님이 촛불을 켜서 주고 덕산스님이 받으려 하자 훅 불어 꺼버렸다. 이때 덕산스님은 활연히 깨쳤다. 그리고 숭신스님께 절을 올렸다.

그 다음날 덕산스님이 〈금강경소초〉를 법당 앞에서 불살라 버리며 말했다.

“모든 현변을 다하여도 마치 터럭 하나를 허공에 둔것과 같고, 세상의 추기를 다한다 하여도 한방울 물을 큰 바다에 던진것과 같다.”

그후 후배들을 제접할 때는 누구든지 보이기만 하면 가서 몽둥이로 때려주었다.

덕산스님이 책을 불사를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가 중도지 불살라 없앤다고 해서 공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없애라고 하면 불태워 없애는 것을 생각 한다.

성철스님과 도반이었던 향곡스님이 성철스님의 법문을 들을 때 ‘불살랐다’는 대목에서 “백련암책 다 불태워야 되겠네”하고 말하자 성철스님이 “연꽃은 흙탕물에 있어도 물들지 않는다. 나는 글자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했다.

중도사상

중도사상을 이해라도 해야 깨달음에 가까이 갈 수있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잡이로 삼을 수 있다. 따라서 교학으로서의 중도를 먼저 설명하면 선 중도를 이해하기 쉽다.

불경은 방대하고 서로 모순되는 것도 많기 때문에 갈피를 잡기 어렵다. 용수는 기원전후 때 사신 분인데 모든 것을 공으로 이해해 공부하고 가르쳤는데 그 가르침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공에 집착해 허무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후세에 무착이 유식을 가르쳐 이것을 타파했다.

그래서 부처님의 설법을 체계화하여 밝혔는데 교학적으로 이것을 교판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론체계를 잘 세운이가 천태종의 지지대사와 화엄종의 현수대사이다.

지자대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오시팔교로 해석했는데 오시란 부처님의 설법을 다섯시기로 나눈 것이다.

첫째는 화엄시, 둘째는 아함시, 셋째는 방등시, 넷째는 반야시, 다섯째는 법화열반시이다. 팔교는 화의사교 즉 돈교, 점교, 비밀교, 부정교이고, 화법사교 즉 장교, 통교, 별교, 원교를 말한다. 원교란 사와 이가 원융한 중도실상을 설명하므로 대승 가운데 최고로 깊은 가르침을 말한다.

화엄종의 현수대사는 오교로 분류했는데 첫째 소승교, 둘째 대승시교, 셋째 대승종교, 넷째 돈교, 다섯째 원교이다.

이처럼 천태 화엄 양종파에서 원교를 불교 최고의 원리로 삼은 것은 똑같다. 그러므로 원교의 근본이 무엇인지 알면 된다.

“원교란 이 중도를 나타내니 양변을 막느니라.”

지자대사의 말이다. 더 자세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마음이 이미 맑고 깨끗해지면 양변을 다 막고, 바르게 중도에 들어가면 두 법을 다 비추느니라.” 양변을 다 막는다(雙遮)는 것은 상대모순을 다 버리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양변을 다 비친다(雙照)는 것은 서로 통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것을 둘이아닌 법문(不二法門)이라 한다. 둘이 아니면 서로 통하게 되는 것이니 서로 통하려면 반드시 양변을 버려야 한다. 
정리 한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