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불교 | 2012/09/10 17:02

현대감각으로 오늘의 고려불화 재현
재현불화 박물관 지어 영구보존 추진

 

 

지난 2010년 10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고려불화대전이 개최됐다. 이 자리에는 현존하는 고려불화들이 대부분 망라되어 선을 보였다. 하지만 160여점에 이르는 고려불화 가운데 국내소장품은 겨우 10여점에 불과했다. 모두가 식민시대를 겪으며 외국으로 유출된 문화재급 고려불화들이다.

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고려시대의 사미가 그린 것으로 알려진 수월관음도 였다. 이 작품은 일본 사찰에 보관중인 작품으로 그 수려함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동안 수없이 보아온 사진 속의 수월관음도를 진품으로 맞이하는 순간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을 정도이다.

이를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작품들이 국내에 있지 않고 외국에서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하고, 이러한 문화재들은 반환받아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외국에서 소장하고 있는 작품을 국내에서 구입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일본에서도 수월관음도는 국보급 유물로 분류되고 있고, 우리가 억만금을 주더라도 절대로 팔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유물이면서도 잠시 대여해 이렇게 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참담하기는 하고, 전시를 마치고 돌아가면 또 언제 볼 수 있을지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황서이 작가는 민족혼이 서린 고려불화 수월관음도를 보며 우리의 고려불화를 억만금을 주고도 가져올 수 없다면 이 시대에 현대적인 감각으로 수월관음도를 다시 재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선조가 고려불화를 그렸고 그 후손인 우리에게도 고려불화를 그렸던 민족의 혼이 살아있습니다. 지금까지 고려불화를 온전히 재현하려는 노력은 여러번 있었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고려불화를 전통방식으로 재현하는 것이 어렵다면 정말 현대적인 감각을 가미하여 완전히 바꾸어서 그려보자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고려불화는 전통적으로 광목에 풀을 빼고 아교를 입혀 틀을 만들고 안료로 그리게 된다. 준비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번거롭다. 요즘 탱화를 그리는 것을 생각하면 알 수 있다.

황서이 작가는 동양화를 전공해 그 기법대로 불화를 그리고자 했다. 자연히 순수 한지에 자연물감을 사용하여 세밀한 선을 그리고자 했다. 그렇다고 순수 한지 작업이 쉬운 것은 아니다. 한지는 붓이 잠시만 머물러도 수분을 흡수 번져버리기 때문이다.

불공을 드리는 마음으로 몸을 정갈히 하여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고요하지 않으면 작업이 안된다. 잠시 마음이 흔들리면 그림의 선이 흔들리고 먹이 번진다. 그러면 고칠수가 없어 작업을 다시해야 한다. 이것이 전통 방식과는 다르다. 안료를 쓰면 조금 잘못된 부분을 고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한지에 그리는 불화는 이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붓을 많이 다뤄본 사람만이 할 수 있고, 그런 사람만이 순수 한지에 실선을 그어갈 수 있다. 실선 하나하나를 그리는 과정은 그대로 수행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황 작가만의 독보적인 한지 불화
황서이 작가는 7세부터 그림에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아버지의 반대로 뜻을 접어야 했지만 그림에 대한 미련으로 간간히 붓을 들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서야 자신의 뜻이 그림에 있음을 자각하고 미대로 전과하여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미대에서 산수동양화를 전공한 이래 여러번 화풍을 바꾸는 모험을 감행한다. 산수 동양화에서 비전을 찾지 못하고 화풍을 문인화로 바꾸었다. 이렇게 문인화에 매진한지 15~16년이 지날 즈음 이번에는 화려한 원색의 민화로 화풍을 바꾸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간 것이 불화의 선이었다. 동양화를 추구하다 보면 선과 만나게 되고 선의 최고의 경지가 바로 불화에서 보이는 선이었다. 이 단계에서 동양화가 도달하는 최고의 그림은 불화라는 확신을 갖고 이제 작가로서 남은 시간은 불화를 그리는데 매진하고 있다.

황서이 작가가 동양화의 선에 주목하면서 그리기 시작한 것이 동자승이었다. 지금은 동자승을 그리는 스님들도 많고 불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황서희 작가가 처음 동자승을 그렸을 때는 스님을 너무 가볍게 표현한다는 비판을 받았고 대중의 주목도 받지 못했다.

황서이 작가가 동자승을 그린 2년 후 성륜스님이 동자승을 그리기 시작했고, 4년 후에는 원성스님이 동자승을 그렸다. 이 두분 스님이 동자승을 대중화 시키고 동자승으로 일가를 이루고 계신 분들이다.
한편 민화로 넘어오면서 동양화의 선을 재평가 하게 되었고 그 종착점이 불화라는 것을 알게되면서 불화의 경지가 얼마나 높은지를 새삼 인식하게 되었다.

민화 또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일반 국민들은 민화를 서민들의 그림으로 여기고 높은 평가를 하지 않았다. 많이 알려진 풍속화 만큼도 국민들은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민화는 풍속화보다 한차원 높은 그림이라고 한다. 풍속화가 당시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그대로 그려낸 것이라면 민화는 그림속에 뜻을 내포하고 있다. 잉어가 뛰어 오르는 그림은 청출어람이요, 학이 비상하는 그림은 출세를 의미하고, 활짝핀 모란은 집안의 번창을 의미하는 등 그림 이상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불화에 심취한 황서이 작가가 불화가운데 주목한 것은 관세음보살이다. 당시 천태종에 다니며 관세음보살 염불에 열심이었고, 관음성지를 찾아다니며 관세음보살에 대한 관심이 높을 때였는데 고려불화대전에서 수월관음도를 보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현대판 수월관음도(그림)이다. 황작가의 수월관음도는 전통적인 수월관음도와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관세음보살 본존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장엄하고 있는 장엄물들은 모두가 현대적인 감각을 가미하여 새롭게 그렸기 때문이다.

가장 큰 특징은 관세음보살의 광배에 ‘참 아름다운 님’이라는 고체의 한글을 내밀하게 그려 넣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동양화 그림에 꽃을 그리면 꽃이라는 글씨 모양으로 그림을 그리는 등 한글을 애용해온 황작가는 불화를 그리는데도 이를 계승하고 있다. 황작가의 다른 불화에서도 연화좌를 만들고, 전통의 당초문에도 하트와 여의주를 혼합하는 등 자신만의 특색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아름다운 고전과 예부터 전해내려오는 전통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전통을 지킨다고 해서 옛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침체일 뿐입니다. 전통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다양한 현대적인 불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진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초청 개인전에서 소품을 그리고 있는 황서이 작가

재현 고려불화, 박물관 지어 보존
황작가는 불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서원을 세웠다. 외국에 반출된 불화들을 국내에서 다시 그리겠다는 것이다. 황작가가 그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고려불화는 해외에 있는 68점이다. 우리의 불화이면서도 마음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미국에 있는 3점과 일본에 있는 65점의 불화들이다.

수월관음도는 첫 번째 시도이고 그 시작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불화가 완성되는 그날까지 수행하고 정진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독려하고 있다.

둘째 이 작품들은 판매하지 않고 박물관을 지어 영구보존하겠다는 것이다. 자연물감에 옻칠을 하면 그것이 천년이상 보존이 가능하다고 한다. 황작가는 불화 보존을 위해 박물관을 마련하고 지금까지 한번도 시도한 적이 없는 한지의 영구보존에 도전하고 있다.

고려불화 이외에도 지금 작업중인 불화가 있는데 바로 오백나한이다. 오백분의 진영을 한사람 한사람 그려가고 있어 언제 완성될지는 모르지만 불화를 향한 황작가의 원력은 머지 않아 그 빛을 발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가진 전시회로는 2010년 일본 동경 아이아트 초대 개인전이 있고 2011년에는 유엔 남북평화대전에 초대되어 국회의사당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특히 일본 개인전에서는 개막전에 모든 작품이 팔려나가는 선풍적인 인기를 보여 황작가의 동양화에 대한 일본인들의 반향이 어떠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한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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