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연구원, 매년 서교수 추모법회 봉행
불교의 실천수행과 객관적 학문의 결합 추구
불교계 핵심사업 마다 담당해온 약방의 감초

혜안 서경수교수는 1925년 함경북도 명천에서 태어나 일제시대를 보내고 해방과 함께 월남하여 서울대에 입학했고, 목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종교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기독교의 배타성에 염증을 느껴 1958년 동대 대학원에서 불교를 전공하면서 불교학자의 길을 걸었다.

동국대에서 이기영교수와 함께 1974년 한국불교연구원(원장 이민용교수)을 만들어 대중불교 운동에 몸바친 혜안 서경수 교수는 1986년 10월 14일 교통사고로 세상 인연을 다했다. 그로부터 벌써 26년이 됐다. 지난 10월 6일 오후3시 한국불교연구원에서 관계자들이 모여 조촐하게 서경수 교수 26주기 추모법회를 가졌다. 〈편집자 주〉

한국불교연구원에서의 추모법회

“해방이후 불교의 중흥을 위해 대학생연합회를 만들고 삼보법회를 이끌었던 덕산 이한상 거사가 대한불교(불교신문의 전신)를 창간할 때 편집국장 박경훈, 주필이 서경수교수였습니다. 나(인환스님)는 신문사 방침에 따라 편집위원으로 선정되어 2년동안 매주 월요일 오전 숭산스님을 모시고 서경수, 박경훈과 함께 편집회의를 했습니다.”

추모법회에서 인환스님이 풀어놓는 서경수교수와의 인연은 운명같은 것이었다. 당시 동국대 최초의 스님 학생이었던 인환스님은 은사스님의 반대 때문에 시간을 쪼개어 공부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지만 공부하는 스님이 없었던 시절이었기에 신문사 창간 때에 추천을 받아 참여할 수 있었고 서경수교수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인환스님은 “당시 불교를 공부하는데 어학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특히 산스크리트와 범어를 배우려 했지만 가르치는 곳이 없었다. 그때 서경수 교수는 인도의 네루대에 있다가 왔기 때문에 서경수교수를 모시고 나와 법정스님 등 대여섯명이 산스크리트와 범어를 배울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또한 이한상 거사가 숭산스님과 불교교과서 제작 보급을 할 때 실무로 참여한 것이 서경수교수와 박경훈선생, 법정스님, 인환스님이었다고 밝히고 “당시 서교수야 말로 불교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약방의 감초와 같은 존재였고, 불교를 위해 전방위로 활약해온 눈밝은 선각자 였다”고 말했다.

혜안의 행적, 그리고 사상

한분의 교수이거나 학자의 업적을 추적하다 보면 불가불 학문적인 실적을 찾게 되고 그 의미를 따지게 된다. 한 인물의 행적을 학문에 국한해 행적을 재현시키는 일이 온당한 일인지 의문이 든다.
혜안 서경수 교수의 행적을 좇다 보면 이런 느낌은 더 절실해 진다. 그의 불교학은 학문적 활동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불교적 수행과 현실참여, 또 불교를 공부하는 세가지 일은 거의 삼위 일체적으로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불교적 행위가 뒷받침된 학문의 내용이 불교학이고 불교를 공부한다는 것은 “삶의 하나의 양식”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혜안 선생은 이런 불교학적 삶의 모습을 재현해 보여주었다.

통보사 극락암에서 경봉스님, 이기영박사와 함께한 서경수교수

한국불교 근대화의 담론

불교근대화를 논함에 가중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한국근대불교 100년사 자료집’의 편찬이다. 이 또한 이한상 거사의 재정적 지원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실질적 자료수집과 편찬 작업은 혜안 서경수 교수의 주도아래 이루어졌다. 백년사 편찬을 마친 서경수 교수의 감회에 찬 말은 그가 이일에 얼마나 몰두하였는지를 보여준다.

“옛날 것은 그렇게 억세게 보존하기를 애쓰는 사람들이 어찌하여 오늘에 가까운 백년 동안의 문서자료에는 그렇게 무관심한지 모르겠다. 백년사의 자료는 그럭저럭 미비한대로 모아 보았다. 이제 분석과 정리 작업이 남았다. 이 방면에 뜻을 둔 동학이나 후학들이 많이 나와 주기 바란다.”
우리는 그의 이런 개척 작업과 근대 불교연구에 대한 애정에 힘입고 있음에도 그 분의 업적을 소홀히 하고 있다. 심지어 근대불교 담론의 글을 쓰며 100년사 자료를 활용하면서 그의 이름을 인용하는데도 무척 인색하다.

기상천외한 문답

혜안 선생은 다면불 같은 사람이다. 연구실에 파묻혀 있는가 하면 선방에 앉아 있고, 산사를 찾는 등반길에 있었고, 또 술집에서 파안대소하며 두주불사하기도 했다. 서경수교수가 즐겨 사용한 ‘세속 속의 탈속’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성철 스님이 법명 혜안으로 지어
번뜩이는 창의성과 직관 놀라워

서경수 교수의 평범한 말, 반어적인 말, 풍자가 가득한 말들은 그 어느것 하나 권위와 형식에 찬 어법은 아니었다. 그러나 매섭게 사태를 꿰뚫는 말이었다. 그의 글 한편 한편을 읽다보면 그것이 수필이 되었건 학술 논문이 되었건 보는 시각과 접근 방법은 전혀 예상 이외의 시각이고 색다른 관점들이어서 다른이들과 분명히 차별됐다.

서구 불교학의 극복

서경수 교수의 한문적 접근의 하나로 주목되는 것은 고승들의 행적과 행장에 대한 관심이다. 그러나 그의 전공은 오히려 서구 불교학의 언어·문헌학적 접근 이어서 학위논문마저 산스크리트에 근거한 연구였다. 이를 생각할때 고승들의 일화 수집은 분명 서구 근대적 불교학의 연구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일종의 이율배반적인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서경수 교수의 창의적인 발상이다. 이것은 후에 〈한국불교 100년사〉 자료수집에 중요한 몫을 하게 된다.

구술사의 중요성은 이미 역사학에서 일반화된 연구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혜안 선생의 학문적 경향도 이런 근대적 불교학 연구의 성격을 지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지닌 모순에 떨어지지는 않았다. 이런 현상은 신기하게도 평생의 학문적 수행상의 반려자였던 불연 이기영 교수와도 상통하는 ‘서구극복’의 훌륭한 예가되고 있다.

그는 수행과 연구를 병행시키는 한국불교연구원을 설립하고 그 중요한 기능의 하나로 구도회를 설치하였다. 이는 곧 실천수행과 객관적 학문의 결합이 돼 혜안 선생이 한국불교연구원 설립 초기 중요역할을 담당했다. 지금 한국불교연구원에서 혜안 선생의 추모 법회를 거행하는 것은 이러한 인연의 결과이다.

긴수염이 트레이드마크인 혜안 서경수 교수. 그는 분명 학문적인 결과물인 논문은 빈약한 면이 있다. 하지만 얼마 안되는 그의 글들은 논문과 에세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규격화된 논문의 영역을 허물고 있다. 더구나 누구도 할 수 없는 그만의 번뜩이는 창의성과 직관을 볼때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26년 전에 쓰여진 글이라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현장을 살피는 그의 안목을 보며 성철스님이 왜 서경수 교수의 법명을 혜안이라 지어주셨는지 가늠할 수 있을 듯하다.
 한기선 기자

■서경수 박사 연보

1925년 함경북도 명천 출생
1940년 중학교 재학시 항일운동으로 6개월 감옥생활
1946년 서울대 문리과대학 예과부 입학
1948년 문리과대학 종교학 전공, 서구종교와 동양종교 비교연구
1950년 통역장교 입대, 정부비판 발언으로 잡혀갔다가 미군의 보증으로 풀려남.
1950년 요양차 절에들어가면서 불교를 접하고 불교로 귀의
1956년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1958년~60년 동국대 불교전공, 용수의 중론연구
1960년 10월 전북대 강사
1963년 동국대 인도철학과 초대교수
1965년 삼보학회 간사 <한국근대불교100년사자료집>편찬
1967년 불교신문사 주필
1974년 이기영과 함께 한국불교연구원 창설
1976년 인도 네루대학에서 인도불교학 연구
1977년 네루대학 한국어과 초대 교환교수
1985년 동국대 인도학술조사단에 참여, 고대인도문화 조사연구
1986년 10월 14일 교통사고로 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