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선묵화·애장품 특별전

"잘사는 사람도 많지만 힘든 사람은 더 많습니다. 세상엔 희망이 필요하고, 제가 가진 것은 달마도뿐입니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찾아와 달마를 닮으려 하고 희망을 찾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도인이 아니라서 겉으로 보고라도 따라 하고 연습해야죠."

달마 갤러리를 냈다는 소식에 지난 18일 전화를 통해 법용스님은 '희망'부터 말했다. 한동안 세상을 돌며 '무보시'로 달마도를 그린 일도, 한곳에 달마도를 모아 달마 갤러리를 연 것도 세상 사람들이 달마도에 담긴 희망을 보고 힘을 얻었으면 한다는 뜻이라 했다.

▲ 법용스님이 달마 갤러리를 둘러보며 자신의 달마도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27일 정식 개관하는 '법용 달마 갤러리'는 아마 전국 첫 달마 갤러리이다. 동구 초량동 3천100㎡(950평) 터에 잘 정돈된 정원과 중앙에서 마치 양팔을 펼친 듯 좌우로 뻗은 단층 건물로 이뤄져 있다. 선화여중 정문 바로 옆이다.

건물로 들어서면 달마도 30점과 진귀한 골동품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고려시대 밥그릇과 백자 찻잔, 조선 선비들이 도시락을 담았던 초배기 도시락, 조선시대 책장과 옷장, 메주틀이 전시돼 있다. 국내에서 초창기 생산된 50년 넘은 '킹스타 전축'도 있다. 갤러리에는 전통 찻집도 있다. "달마가 눈썹을 뽑아 던졌더니 차나무가 됐다는 얘기가 있다. 차는 수행자의 오랜 벗이며 그 자체로 선이 된다. 갤러리에 차가 어울리지 않느냐"는 게 스님의 말이다.

스님에게 달마도 '무보시'는 곧 수행이었다. 제주•강원을 비롯해 전국에 안 가 본 곳이 없다. 스님은 "처음엔 10만 명에게 그려 주자했던 것이 어느덧 20만 점이나 됐다. 부산에서만 15만 점을 그려 나눠 줬다. (내가 그린) 달마도가 특별하다 하는데 무슨 그림에 힘이 있겠느냐. 워낙 많이 그려 나눠 주다 보니 좋은 일 생기는 사람도 많아졌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 수행이 이번엔 갤러리 개관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스님의 달마도는 인기가 좋다. 거친 듯 하지만 정감이 간다. "9년 면벽 수행을 한 달마 얼굴이 과연 깨끗하기만 할까요?" 스님은 달마도를 그릴 때 그림 받을 사람의 얼굴을 살피고 대화를 나눈 후 삶의 그늘을 읽고 이를 상쇄할 표정을 얹어 낸다. 손버릇이 나쁘다면 손을 작게 그리고 귀가 얇아 남에게 많이 속았다면 귀를 도드라지게 그리는 식.

갤러리가 들어선 터가 편안하다 했더니 이어지는 스님의 말을 듣고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갤러리 터와 건물은 지인으로부터 잘 보존하고 좋게 쓰라는 당부와 함께 기증받았다. 만만치 않은 역사가 담긴 장소이기 때문. 양성봉 초대 부산시장이자 4대 경남도지사가 관사로 쓰던 곳이다. 한국전쟁 때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머물렀고 당시 내각 인사들도 이곳을 자주 찾았다. 또 한국 최초 여성박사이자 이화여대 총장을 지낸 김활란 여사도 한때 머물렀다.

그 덕분인지 갤러리를 꾸미는 도중에 개방을 했더니 방문객이 꽤 찾는다. 벌써부터 음악회나 문학 행사 장소로 빌려 달라는 요청이 이어진다. 아이를 동반한 주부나 직장인들도 적잖이 찾는다. 스님은 "고위 인사 관사로 쓸 정도니 자리는 좋을 테고, 사람들도 편안하게 느끼니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갤러리에서는 개관을 맞아 27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선묵화(달마도) 및 애장품 특별전'이 열린다. 스님의 달마도 30점을 비롯해 기증받은 물품이 전시·판매된다. 051)917-2005~6.

이재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