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고 고익진 교수의 초기불교 해석

이 중 표 (전남대 철학과 교수)

고익진은 1971년에 동국대 대학원에서 〈아함법상의 체계성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한다. 자신의 논리로 기존의 학설을 비판하면서 아함경의 여러 교설들이 하나의 체계를 이루고 있음을 주장하는 이 논문은 초기불교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깨고, 붓다의 교설이 일관된 체계를가지고 설해진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불교학계에 큰 충격을 주면서 초기불교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고익진은 대승불교가 초기불교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 그는 대승의 이론적 기초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함이요, 아함을 완성하고 있는 것은 대승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아함이 붓다가 깨달아 가르친 전부가 아니라고 본다. 그는 여러 불경을 연구한 결과 붓다가 깨달아 보여준 길은 아함, 반야, 법화의 삼부경을 통헤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일승보살회 법회에서 법문하기위해 법석에 앉은 생전의 고익진 교수

고익진의 교상판석과 일불승

교상판석은 대소승의 모든 경전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교설이라는 전제 아래, 각 경에서 설한 교상의 높낮이를 판별하여 위치를 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승경전들은 후대에 형성된 것으로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 널리 알려진 현대에 교상판석은 무의미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아함경만이 불설이고 대승경전은 불설이 아니라고 한다면 동북아시아의 불교 전통은 토대를 상실할 것이다. 대승불교권인 북방불교는 대승불교의 근거를 찾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그러나 고익진이 보는 대승불교는 초기불교에 뿌리를 두고 후대에 나타난 불교가 아니라, 석가모니 부처님이 직접 가르친 불교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아함의 교상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대승경전을 통해 완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익진이 아함, 반야, 법화의 순서로 판석한 교상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고익진은 “아함의 모든 교설은 12연기로 들어가고 12연기는 아함의 교설을 완성한다. 모든 형태의 연기는 진여실상에 대한 미혹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12연기가 성립하려면 그것의 성립근거로서 진여실상이 있어야 한다. 아함에서는 그것을 명(明)이라는 말로 표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명의 구조나 체상에 대해서 아함은 아무런 설명을 해주지 않지만, 12연기는 명에 대한 미혹, 다시말하면 무명을 연하여 일어난 것이므로 12연기가 환멸한 것이 명의 체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12연기가 환멸한 체상을 형용하는 말이 공이기 때문에 명의 체상은 세간의 모든 염오상이 사라진 지극히 청정무애한 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같이 아함경은 12연기설에 입각해서 중도와 공을 천명하고 있다. 아함경이 이미 공을 제법실상의 진여로 이야기 하고 있다면, 제법개공을 천명하는 반야경이 아함경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그 차이는 아함경이 망념을 다한 진리의 세계를 절대적인 가치라고 보는데 반하여, 반야경은 열반도 공이라고 보는데 있다. 따라서 반야경의 공설은 아함경의 연기설을 확대 해석한 것이다.

그런데 초기 대승경전인 법화경은 불교의 궁극적 이념은 피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불하는데 있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법화경의 일불승설에 주목한다.

일불승설은 3승은 방편이고, 일불승만이 진실이라는 교설이다. 즉 4제를 닦아 아라한이 되고, 12연기를 닦아 벽지불이 되고, 6바라밀을 닦아 보살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 것은 임시 방편에 불과하고,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진실한 뜻은 모든 중생들에게 부처님과 똑같은 깨달음을 얻게 하고자 함에 있다는 것이다.

고익진은 “불교의 가장 근본적인 경전에 설해진 교리가 이렇게 일불승의 보살도와 부합한다면, 그것은 불교이 가장 근본적인 교리체계요, 또 그것은 불교 근본 교리의 전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오늘날 한국불교가 지향해야 할 종교적 이념은 일불승의 보살도 이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이러한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일승보살회를 조직하여 가르친다.

◇생전에 고익진 교수와 함께했던 일승보살회 야외법회

법상의 의미

기존의 초기불교 연구가 교설을 개별적으로 이해하는 것이었던 반면 고익진의 아함법상의 체계성 연구는 이러한 통념에서 벗어난 독창적인 연구이다. 그는 이 논문에서 12처, 18계, 5온, 12연기가 일관된 체계를 가지고 붓다의 깨달음을 교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고익진이 말하는 법상은 법 그자체이다. 고익진이 이야기하는 법 그자체는 붓다가 깨달은 아트만적 실체를가리킨다. 고익진에 의하면 불교에서 공으로 표현되고, 제법실상으로 이야기되는 것은 우리의 참된 나인 아트만적 실체인 것이다. 이 참된 나는 부정을 통해서만 나타나기 때문에 불교는 무아설을 시종일관하며, 연기무아설에서 나는 부정되지만, 그러나절대적으로 없다는 말은 아니다. 절대적으로 없지는 않은 이 나가 업보, 윤회의 주체이다.

고익진이 생각하는 붓다 교설의 변증법적인 단계는 경전으로 보면 아함, 반야, 법화의 3단계지만 법상으로 보면 9단계이다. 이 가운데 아함에서 이야기 되고 있는 것은 7가지이고, 육바라밀설은 반야경에서, 일불승설은 법화경에서 이야기 된다고 본다. 이처럼 아함의 교리는 7단계의 12연기설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으로 설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함법상의 체계

고익진에 의하면 진여실상을 알지 못함으로써 중생들의 유위세간이 연기한다. 66법이라는 유위세간은 18계라는 실체를 미혹하여 연기한 것이고, 5온이라는 유위세간은 6계라는 실체를 미혹하여 연기한 것이며, 12연기라는 유위세간은 명이라는 실체를 미혹하여 생긴 것이다. 이것이 반야경에 이르면 반야바라밀다라는 궁극적 실체가 된다. 아함, 반야, 법화를 불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궁극적 실체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와같은 실상론의 전개과정에서 아함은 필연적으로 반야로 이어지고, 반야는법화로 나아가야하기 때문에 한줄기 성불에 이르는 일불승이다. 이것이 고익진의 생각이다.

고익진은 이러한 실체로적 실상론에 의하여 인연, 집, 연기를 해석한다. 이 세 개념이 아함에서 유위법의 성립과정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여기서연기는 인연과 집을하나로 결합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고익진이 해석한 아함의 체계는 18계라는 진여법계를 인연으로 66법이라는 유위세간이 발생하고, 6계라는 진여법계에 미혹하여 5온이라는 유위세간이 집하고, 명이라는 진여실상에 미혹하여 12연기라는 유위세간이 연기하는 치밀한 체계이다.

고익진 박사 연표

1934. 6. 20. 광주광역시에서 5남 2녀의 4남으로 출생.
1948. 4.~1951. 3. 광주서중학교 졸업.
1951. 4.~1954. 3. 광주고등학교 졸업.
1954. 전남대 의대 의예과 재학 중 심내막염(심낭염) 발병.
 광주 적십자병원에 5년간 입원.
 퇴원 후 광륵사에서 요양 중 불교 입문.
1965. 3~1969. 2.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불교학과 졸업.
1969. 2. 동국대학교 수석 졸업
 (수기 「역시 공부는 늦지 않았다」, 『여성동아』 1969. 4월호).
1971. 2.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석사
 (학위 논문 「아함법상의 체계성 여눅」).
1971. 3.~1974. 3.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현 불교문화연구원) 조교.
1973. 7.~1977. 한국불교학회 학술 간사.
1974. 2.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박사 과정 수료.
1974. 3.~1980. 2. 동국대학교 강사.
1975. 5.~1980. 2.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여구소 연구원.
1979.~1987. 한국불교학회 이사.
1980. 3.~1983. 2.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전임강사.
1980. 10. 『한국불교전서』 편찬실장.
1981. 일승보살회 창립.
1983. 3.~1986. 2.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조교수.
1986. 2. 한국사상사학회 부회장.
1986. 3.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부교수.
1988. 2.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박사
 (학위 논문 「한국고대불교사상사연구」).
1988. 3.~1988. 10. 지병 악화로 서울 세브란스병원에 입원, 수술 및 치료.
1988. 10. 17. 입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