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선 | 2013/12/27 17:46

불기 2558년 갑오년(甲午年)은 말의 해인데, 말띠 가운데에서도 으뜸가는 청마(靑馬)의 해이다.
그리고 말(午)은 12지의 일곱 번째 동물로서 경오(庚午), 임오(壬午), 갑오(甲午) , 병오(丙午), 무오(戊午) 등으로 순행하고, 시각으로는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이며, 방향으로는 정남(正南), 달로는 음력 5월에 해당한다.

경우큰스님

말의 이미지는 박력과 생동감으로 표현된다. 외모로 보아 말은 싱싱한 생동감, 뛰어난 순발력, 탄력있고 미끈한 체형을 가지고 있어 강인하고 날렵한 인상을 주는 동물이다.

예부터 말은 원시 고분미술의 토우나 벽화 등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신화나 전설같은 구전되는 이야기 속에서 민속신앙, 민속놀이 등의 고전문화 전반에서 다양하게 전승되고 있어, 말은 일찍부터 우리 인간의 생활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음을 잘 알 수 있다.

말은 십이지 동물 가운데 조류인 닭과 상상의 동물인 용과 함께 하늘을 날 수 있는 신성한 서수(瑞獸)로 그려졌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신라 고분인 천마총 벽화이다. 벽화의 주인공은 날개 달린 천마(天馬)다. 천마는 지상에서 이룰 수 없는 구원의 의미를 담고 있다. 천마는 하늘의 옥황상제가 타고 다니는 것으로 표현된다.

지상의 말에 날개를 달아 천상을 날게 한 상상은 우리 민족의 말에 대한 신앙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소나 돼지, 심지어 개고기까지 먹으면서도 말고기는 먹지 않았으며, 말이 죽으면 따로 무덤까지 만들어 주었다. 경기도 파주 윤관 장군 묘역을 비롯하여 전국 여러 곳에 말 무덤이 있다.

삼국시대의 신라와 가야의 고분유물에는 기마형(騎馬形)을 비롯하여 말 형상의 토우들이 자주 출토되고,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각종 말 그림이 등장하는데, 말이 이승(땅)과 저승(하늘)을 잇는 영매체로써 영혼이 타고 저 세상으로 가는 동물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말이 그려진 토우나 천마도 등은 그 표현방법에 있어서는 다를지 몰라도 그것이 지니고 있는 사상은 다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옛 기록에 의하면 말은 모두 신령스럽고 상서로운 동물로서 <삼국유사> 또는 <삼국사기> 등에 나타나고 있는데,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 등 국조가 탄생할 때에 서상(瑞相)을 나타내 주는 것이라든지, 백제가 망할 때 말이 나타나 흉조를 예시하여 주는 것이라든지, 모두 신비한 존재로 등장하고 있다.

신라의 박혁거세 탄생설화를 보면, 백마(白馬)의 울음소리를 듣고 가보니, 백마가 알을 품고 있다가 승천하면서 큰 알을 하나 두고 갔는데, 그 알에서 박혁거세가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밖에도 후백제의 견훤 탄생설화 등 신성한 탄생을 주제로 한 설화에는 백마가 곧잘 등장한다. 여기서 말은 지상과 천상을 이어주는 신령스러운 교역자 역할을 맡고 있다.

우리나라의 토종말은 제주도 조랑말로서 비록 체구는 작지만 강인한 체질이며 순하고 영리하다. 토종말 외에도 고려시대에는 몽고가 한동안 제주도에서 말을 사육하여 군마로 쓰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김만일이라는 사람이 있어서 우리말의 좋은 혈통을 보존키 위해 우수한 숫말의 귀를 잘라 표시하거나 한쪽 눈을 보지 못하게 했다는 기록도 있다.

말은 십이지 동물 가운데 용호과 함께 튼튼한 육체와 활기 넘치는 정력의 화신으로서 희망과 밝은 미래를 약속해주는 존재로도 자리잡았다. 속담에 ‘말 가는데 소도 간다’는 말이 있듯이, 말은 우두머리요, 지도자요, 선구자를 상징한다.

실제로 우리의 민속놀이인 윷놀이에서도 말은 으뜸이다. 도는 돼지, 개는 개, 윷은 소를 상징하고, 가장 점수가 많은 모는 말을 상징한다. 즉 단순한 뜀박질이 아니라 말은 힘과 능력을 의미한다. 그래서 옛날 사대부 집안에서는 자손들의 출세가도를 위해 높은 기상과 청정함을 상징하는 백말 그림을 걸어놓았다. 부부의 인연을 맺는 혼례에서도 말은 빠질 수 없는 동물이다.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에도 혼례를 치르는 신랑이 백말을 타고 신부집으로 가고 있다. 정조가 한 가난한 신랑이 돈이 없어 혼례를 못 치르는 딱한 사정을 알고 말 한 필을 하사하여 혼례시켰다는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다.

말은 또한 신의(信義)의 상징이다. 즉 나라 사이의 공물에서 빠진 적이 없는데, 두 나라 사이의 신의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단군왕검의 아들이 중국의 우왕에게 홍수를 다스리는 법을 전수할 때에도 그 신의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맹세로 우왕이 백마 피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고전 《홍길동》에도 도적들이 홍길동을 우두머리로 받드는 과정에서 백마 피를 올려 충성을 맹세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렇듯 동물 중에 말을 상수(上水)로 치는 것은 우리 민족의 말에 대한 신앙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토속신앙인 무당의 굿거리에는 군마대왕(軍馬大王)이 등장하는데, 이는 곧 힘을 다스리는 무신(武神)이다. 그래서 당골의 제단에는 짚이나 나무로 말 모양을 만들어 올려놓고 있다. 그런가 하면, 말은 서낭신이 타고 다니는 승용차이며, 호랑이를 퇴치하는 사냥마이기도 했다. 남해안 충무지방이나 서산지방의 당집에서 흔히 본다.

말은 양(陽)을 상징하는 동물로 일찍이 알려져 왔다. 태양이 가장 높이 떠 양기가 가장 충만했을 때를 정오라고 한다. 왕성한 에너지와 정열적인 활동 역시 말의 몫이다. 그래서 우리의 전통적 가부장 사회에서는 일찍이 말을 남성적 동물로도 여겨 왔다.

세시풍속에서는 말을 여섯 가축의 하나로 인식하고 정월 상오일, 10월 말날에 특별히 말을 위해 제물을 차리고 고사를 지냈다고 한다.

오늘날까지도 일부 지역의 동제당에 마상이나 마도가 모셔지고 있다. 동제 신당에 봉안된 말은 마을의 수호신인 동신의 신격이 타고 다니는 말에 대한 숭배관념에서 봉안되는 경우 등이 있다. 

이렇게 볼 때 말이 지니는 상징적 의미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교훈적으로, 때로는 비보적이자, 희화적으로까지 다양하게 전해지고 있다.

갑오년은 말의 으뜸인 ‘청마의 해’라고들 하는데, 푸른 말(靑馬)이란 젊고 힘찬 역동적인 의미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갑오년에 원(願)을 바로 세우면, 저 들판을 달리는 말의 기운처럼 어느 해보다 더욱 강력한 원으로 인해 우리 인생의 생노병사, 희노애락에서 생성되는 번뇌와 업이 소멸하게 된다.

그러니 경오년 새해에 우리 불자들은 부디 큰 성불의 원을 세우고 기도하여 중생구제의 대승보살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불자들이 지금 간절히 바라는 것은 불교의 중흥일 것이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렀더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이 널리 전파되기를 바라는 불자들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

이 때문에 모든 불자들은 수행정진하고 성불을 서원하며 중생제도를 염원하는 것이다. 중생이란 부처의 씨앗인 불성을 드러내지 못한 존재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생은 부처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가마니와 짚신이 다르지만 그 본질은 짚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우리 중생들도 부처가 될 수 있음이다.

따라서 우리는 중생들이 수행의 길로 나아가 깨달음에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 이 일을 하는 사람이 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은 모든 중생의 고통을 보고 구제하는 보살이고, 지량보살은 지옥중생을 모두 구원하겠다고 서원했다. 아미던 부처님은 모든 중생이 극락왕생하는 것을 돕겠다고 서원했다.

갑오년 새해 아침에 우리 불자들이 청마의 기상을 본받아 더 활발하게 중생제도의 대승보살이 되겠다는 서원을 해야겠다.

말은 신의(信義)의 상징이기도 하다
단군이 홍수 다스리는 법 전수할 때
맹세해 백마피로 제사지낸 기록
백마피를 올림은 충성 맹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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