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법향을 찾아서

불모가 그린 화려한 채색의 담징벽화 금당수리 중 불타

고구려 담징 스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 나라 법륭사②
한기선 | 2014/05/27 01:30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 연구소장


채색의 마법사 고구려 담징스님은 나라현 이카루가정(斑鳩町)에 있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목조건축 가람이 남아 있는 법륭사 (法隆寺, 호류지) 금당에 벽화를 그렸다. 법륭사는 서기 607년에 완성된 절로 1993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되었으며 일본인들에게 사랑받는 유서 깊은 절이다.

금당벽화 6호벽

글쓴이가 어린 시절 국사 시간에 ‘호류지의 금당벽화는 고구려 스님 담징이 그렸다’라고 배웠는데 그때 담징스님이 그린 벽화가 50면이나 된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그러나 담징 스님은 무려 50면이나 금당(대웅전)에 벽화를 그렸다. 아마도 이러한 숫자는 중국 돈황 석굴의 500여점에 이르는 벽화를 빼놓고는 한국과 일본을 통틀어 가장 많은 벽화일 것이다.


고구려 담징 스님이 일본에 건너간 기록은 《일본서기》에 있다. 일본최초의 여왕 스이코 18년(610) 봄 3월 조에 보면 “高麗王貢上 僧曇徵 法定 曇徵知五經 且能作彩色及紙墨  始于是時歟”라는 기록이 있다. 번역하면 “고구려왕(영양왕)이 승려 담징(曇徵, 돈쵸)과 법정(法定, 호죠)을 보냈다. 담징은 오경(사서오경)에 능통하고 채색(그림)을 잘 했으며 종이와 먹 만드는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물레방아와 맷돌을 최초로 전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채색의 마법사 담징스님이 벽화를 그린 법륭사에 안타깝게도 1949년 불이 났다. 벽화 이야기를 하기 전에 법륭사에 난 큰불 이야기를 해 둘 필요가 있다. 1949년 법륭사는 금당 수리 중이었는데 이때 예기치 않은 화재가 발생하여 담징의 그림이 불타는 불행을 맞는다. 이때 화재로 외진벽 12면이 불에 탔고 나한도를 그린 18면은 화재 후에 벽이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산실되어버렸다. 그러나 비천상 등 20면은 일부 떼어내어 별도의 장소에서 보존하고 있어서 화재를 면했다.

 

우리가 흔히 ‘금당벽화’라고 하면 금당 외진(外陣) 흙벽에 그려진 12면을 말하지만 실제로 담징스님의 벽화는 내진소벽의 비천(飛天) 벽화 20면과 외진소벽(外陣小壁)의 산중나한도등 18면이 더 있다. 이를 모두 합하면 50면으로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다.


외진 벽화에는 1호부터 12호까지 번호가 매겨져있다. 동쪽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쪽부터 1호벽이며 그 옆이 2호벽으로 시계방향으로 번호를 매겨 나가 동쪽 문 북쪽으로 나있는 벽화가 12호 벽화다. 벽면의 크기는 가로 폭 225-260 센티의 대형크기와 155센티의 소형벽 두 가지였다. 담징스님이 그린 벽화는 인도의 아잔타석굴 벽화와 중국 돈황 막고굴 벽화와 함께 아시아 고대 불교회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 받아 온 작품이었다.

금당벽화 10호벽

법륭사 금당벽화에 대해 미술사학자인 도쿄대학의 다키세이치 교수는  사방사불로 설명하고 있으나 후쿠이리키치로씨 등은 석가·아미타·미륵·약사여래로 구성된 ‘사불정토도(四佛淨土圖)’로 보고 있다.


금당 외진(外陣)의 12점 그림을 살펴보면, 제1호 벽화 ‘석가정토도, 제2호 ‘보살반가상’ 제3호 ‘관음보살상 ’제4호 ‘세지(勢至菩薩)보살상’ 제5호 ‘보살반가상’ 제6호 ‘아미타정토도’ 제7호 ‘관음보살상’ 제8호 ‘문수보살상’ 제9호 ‘미륵정토도’ 제10호 ‘약사정토도’ 제11호 ‘보현보살상’ 제12호 ‘십일면관음보살상’으로 이뤄져 있다.


이런 소중한 금당에 화재가 발생 한 것은 1949년 1월 26일 새벽의 일이었다. 금당 화재의 원인에 대해서는 벽화 모사 화가가 사용하고 있던 전기 이불방석이 발화점이라는 설과 형광등용 전열기기의 누전 그리고 방화설이 있다. 흔히 금당벽화가 소실되었다고 하나 실제는 완전히 소실된 것이 아니라 까맣게 그을린 것이라고 법륭사 측에서는 말하고 있다. 일본말로 소손(쇼손)이라고 하는데 우리말로는 손상을 입은 것으로 보면 된다.

 

담징스님, 법륭사 금당벽화 50면 그려
외·내진벽화에 보살반가상 등 ‘세계유산’
일본 금당화재 계기 문화재보호법 제정


손상된 벽화는 아크릴수지와 요소수지를 주입하여 경화시킨 후 1954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복원하여 법륭사 안 수장고()를 지어 복원해두고 있으나 보존상의 이유로 일반인들에게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불탄 금당은 1954년 완전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법륭사 금당 화재를 계기로 서둘러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하여 1950년 8월 29일부터 엄격한 관리를 하고 있다.


일본인의 영웅 1호인 성덕태자의 초대를 받아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중국의 돈황 막고굴 벽화를 능가하는 실력으로 법륭사 벽화 50면을 그린 담징스님! 담징스님은 일본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한 종이 만드는 기술과 먹 만드는 법을 전해주었을뿐 아니라 일본최초로 물레방아를 이용한 맷돌 사용법도 전한 뛰어난 신기술인 이었다.


-다음호〈3〉는 담징스님이 전한 후쿠오카 관세음사 맷돌이야기로 이어집니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Copyright ⓒ 주간불교 all rights reserv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