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선 | 2014/09/12 15:31

일본인들이 추앙해 마지않는 성덕태자는 고구려 혜자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불법(佛法)을 공부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혜자 스님은 시가현의 백제사滋賀縣東近江市百濟寺)에도 주석했지만 나라시대에 지은 일본 최고(最古, 607년)의 건축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빛나는 법륭사(法隆寺)에도 주석한 바 있는데 이곳에 있을 때 성덕태자와 관련된 이야기가 흥미롭다.

스님들이 주석했던 승방터를 알리는 안내판

이 이야기는 일본 최대 설화집인 《곤자쿠이야기, 12세기》에 전해지고 있는데 당시 성덕태자는 법륭사 안에 몽전(夢殿)이라는 팔각원당(八角円堂)을 짓고 종종 그곳에 들어가서 수도(修道)를 하곤 했다. 몽전에 들어 갈 때는 하루에 세 번 목욕재계를 하고 들어가서는 철야정진을 하는 날도 많았다. 그만큼 불심이 깊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던 어느 날 성덕태자는 몽전에 들어가 일주일 가까이 나오질 않았다. 이에 궁전에서는 태자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때 고구려 혜자 스님은 태자가 몽전 안에서 행하고 있는 수행정진을 방해 하지 않게 궁전 관계자들을 안심시켜 태자는 7일간의 수행을 무사히 마치고 8일째 밖으로 나온 적이 있다. 만일 고구려 혜자 스님이 아니었다면 성덕태자는 7일간의 수행정진을 마치지 못했을 것이다.

고구려 혜자스님에게 가르침을 받은 성덕태자가 발원한 절이라는 유래가 기록된 안내판

고구려 혜자 스님(慧慈, ? - 623)은 일본 최초의 여왕으로 불교를 적극 수용한 스이코왕(推古天皇, 재위 593~628)때에 고구려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최초의 절인 비조사 (飛鳥寺)에서 초기 일본에 불법(佛法)을 전했으며 이어서 나라현의 법륭사와 시가현의 백제사 등에서 성덕태자의 스승으로 일본 불교를 흥륭시킨 스님이다. 혜자 스님이 아스카(飛鳥)와 나라(奈良)에 이어 시가(滋賀)의 백제사 등에서 보낸 시간은 모두 20여 년간이다. 혜자 스님의 발자취를 따라 필자는 아스카에서부터 나라를 거쳐 시가현에 이르기까지 곳곳을 찾아 떠났는데 이 지역이 서로 떨어져 있는 곳이다 보니 시간과 경비 문제로 한 번에 가서 다 돌아보지 못하고 한 해에 한 곳씩 다니는 품을 팔아야 했다.

맨 처음 찾아 나선 곳이 불교의 초전지(初傳地)인 아스카 지방의 비조사(飛鳥寺)였다. 아스카지방에서 비조사는 14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불교 초전지 답게 순례객들도 많고 불교 공부를 하는 학자나 연구자들에게는 필수 코스의 절이다.

 

성덕태자의 스승인 고구려 혜자스님
태자의 몽전수행을 방해 못하게
궁전관계자 설득 7일 수행 마치게 해

“비조사는 서기 538년에 한국의 옛 백제국 제26대 성명왕 때 위대한 부처님의 가르침과 불상 등이 일본에 전파 수용되었습니다. 이 절의 건립을 위해 고구려시대의 설계도를 받아들여 백제국에서 파견된 승려와 전문 기술자의 지도와 협력에 의해 서기 596년 훌륭한 절이 완성되어 훗날 일본 불교문화 형성의 원점이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아스카에 수도를 세우는 근원이 되었습니다. (중략) 이 절의 탑 건축에는 백제국에서 보내진 부처님 사리가 수장되어 있으며 지붕의 기와는 백제계 기와가 사용되었습니다. 백제와 고구려 문화의 은택으로 이렇듯 일본문화 향상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해주신 귀국 선인들의 수고에 깊은 존경심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중략) 이곳에는 백제의 혜총법사와 고구려의 혜자 법사가 머물며 성덕태자의 스승으로 계셨습니다.(후략)”

이것은 비조사 주지인 야마모토 호우준 스님이 이 절을 찾는 한국인들을 위해 한글 안내문을 만들어 나눠준 글의 일부이다.

백제사임을 알리는 입구 돌비석

호류지(법륭사)의 금당벽화로 잘 알려진 법륭사와 시가현의 백제사는 가을 단풍이 막 물들어 갈 무렵에 찾아갔었다. 나라현 이카루가쵸에 있는 법륭사는 평지에 있는 절이지만 시가현의 백제사는 산 속에 있는 절로 단풍이 한창 물들 무렵이면 일본 전역에서 붉게 물든 단풍으로 아름다운 경치를 보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다. 시가현의 백제사에는 고구려 혜자 스님뿐만 아니라 백제의 혜총이나 관륵 스님들도 주석했던 곳으로 필자는 일본의 그 어느 절보다 백제사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시가현에 도착한 첫날, 하루에 서너 대 밖에 다니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백제사 절터 입구에서 깊어가는 가을 밤하늘의 별을 바라다보던 날, 1400여년의 시공을 뛰어 넘은 오우미( 近江市) 백제사 하늘의 맑은 별들이 유난히 빛났던 기억이 난다. 백제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서교사(西敎寺)라는 절도 혜자 스님과 관련이 있는 곳이다. 이곳은 혜자 스님이 주석한 절은 아니지만 성덕태자가 20년간의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고구려로 돌아간 스승 혜자 스님을 그리워하며 지은 절로 유명하다. 일본인들이 최고로 존경하는 성덕태자를 제자로 삼아 가르친 사람은 다름 아닌 고구려 혜자 스님! 그러기에 혜자 스님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마음은 더욱 뭉클할 수밖에 없다.   

이윤옥/한일문화어울림 연구소장

 
★ 찾아 가는 길

<백제사>
*주소: 滋賀縣東近江市百齊寺町323(百濟寺,햐쿠사이시)
*가는 길: ＪＲ니시니혼 비와코선(西日本 びわこ線）을 타고 오우에하치망에키(近江八幡驛)에서 내리면 백제사까지 가는 순환버스가 1시간 1대씩 있다.

 

<서교사>
*주소 : 滋賀縣大津市坂本５丁目13-1 (西敎寺,사이쿄지)
*가는 길: JR 코사이센 히에이잔 사카모토역(湖西線比叡山坂本驛) 앞에 나오면 서교사행 버스가 자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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