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선 | 2014/12/10 10:56

신라인 원진(円珍, 814-891)스님이 주석하여 절을 부흥시킨 시가현(滋賀縣) 오오츠(大津市)의  삼정사(三井寺, 미이데라)에는 고려대장경이 있는데 이 대장경은 대형 팔각윤장(八角輪藏) 속에 모셔져 있다. 이 대장경이 이곳으로 온 사연은 풍신수길의 5대 참모 중 하나인 모리데루모토(毛利輝元)가 1602년 야마구치현(山口縣) 국청사(國淸寺)에서 가져온 것이다. 경장 안은 자유롭게 들어 갈 수 있는데 고려대장경이 모셔져 있다는 안내판을 읽고 필자는 놀라 경장 안으로 들어가서 한참이나 팔각윤장을 뚫어져라 바라다보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고려대장경이 원래 있었다던 국청사에는 무슨 사연으로 건너갔으며 모리장군은 왜 이곳 시가현의 삼정사까지 고려대장경을 가져온 것인지에 대한 자세한 내력은 알 수 없어 안타까웠다.

신라 원진스님을 모신 신라 선신당 본당

경장을 빠져나와 당원(唐院)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도중에 일본 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목조탑인 삼중탑을 볼 수 있다. 지진이 많은 나라여서 인지 한국 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석탑은 거의 찾아 볼 수 없고 삼중탑이나 오중탑 같은 목조탑이 눈에 많이 띈다. 원진스님의 무덤을 둘러보고 나와 찾아가야 할 곳이 바로 신라선신당(新羅善神堂)이다. 500엔의 입장료를 내고 삼정사를 들어갈 때 나눠주는 절 안내장에는 삼정사 경내 오른쪽 위에 신라선신당이 보이는데 실제로는 삼정사 경내 소속은 아니다. 드넓은 삼정사 경내만 돌아봐도 다리가 아플 지경인데 경내를 벗어난 신라선신당까지 걷기에는 다소 힘이 부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택시를 탈거리도 아니고 다른 교통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는 수 없이 삼정사에서 나와 정문에서 밖을 향해 서서 왼쪽으로 걸었다. 한 10여분 걸었을까? 큰 길에서 그다지 떨어지지 않은 곳에 홍문왕(일본의 39대 천황, 재위기간이 가장 짧은 왕, 672.1.9 - 672.8.21) 무덤이 나오고 그 위쪽에 신라선신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홍문왕 묘소를 뒤로 하고 위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단아한 돌로 세워진 도리이가 나오고 다소 어두침침한 숲길이 이어지는데 나무가 우거져 대낮에도 음습한 기운을 느끼게 해주는 숲길이다. 이곳을 벗어나면 곧이어 안온한 양지쪽에 신라선신당 본당 건물이 당당한 그 위용을 자랑한다. 신사 안으로 들어 갈 수 없도록 문이 굳게 잠겨 있어 밖에서만 건물을 바라다보아야 하는데 신라라는 이름만 들어도 설레게 만드는 이곳을 찾은 날은 마침 한 무리의 일본 역사유적 답사단들도 찾아와 그들과 통성명을 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삼정사연기()》에 따르면 ‘신라명신(新羅明神)은 원진스님이 당나라 유학 때 현신한 불법(佛法) 수호신으로 험난한 뱃길에서 무사 귀국한 원진스님은 삼정사를 짓고 신라명신을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의 절에서는 부처님만 모시지만 일본의 절에서는 같은 경내에 부처를 모시는 본당과 부처와는 다른 속신(俗神)을 모시는 신사(神社)가 사이좋게 존재했었는데 이러한 것을 신불습합(神佛習合)이라한다. 그러나 명치유신 때 신불분리(神佛分離)정책에 의해 이후에는 사이좋게 한 경내에 있던 절과 신사는 따로따로 갈 길을 달리하게 되었다.

 

신라 명신은 원진이 당나라 유학때 현신한 불법

수호신으로 험난한 뱃길에서 무사 귀국한 원진

스님은 삼정사를 짓고 신라명신을 모시게됐다

 

이마이(今井啓一)교수는 《귀화인과 사사‘社寺’》에서 “신라선신당은 원성사의 오사진수(五社鎭守)의 하나로 북원(北元)에 속한다. 이 신사의 본존인 국보 신라명신의 신상(神像)은 산형(山形)의 관을 쓰고 갈색 도포를 입었으며 흰수염을 기른 모습이다. 이 분이 일본의 개국신인 스사노오미코토(素盞烏尊)이다. 이곳 신라선신당 보전(寶殿)에서 미나모토노요리요시(源賴義)의 아들 요시미츠(義光, 1045-1127)는 원복(元服, 나라시대 이후 남자의 성인식)을 했으며 성을 ‘미나모토(源)’에서 ‘신라사브로(新羅三郞)’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했다. 미나모토(源) 씨 가문이라고 하면 헤이안시대 이름난 무장집안이다. 가문을 중시하는 무가사회의 장수 집안 아들이 신라를 얼마나 흠모했으면 성씨를 바꿔 버린 것인지 고개가 갸우뚱 해질 것이다. 신라사브로 요시미츠는 명사수인데다가 말도 잘 탔던 인물로 전해진다.

심정사에서 나오아 신라선신당으로 가는 길목에는 고대 조선인의 온돌 유적이 있다

내친김에 신라선신당을 나와 신라사브로의 무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비록 역사에서는 사라졌지만 한국인에게 신라 또는 고구려, 백제 같은 말들은 쉽게 잊힐 수 있는 낱말이 아님을 체험적으로 실감한다. 그래서 서울에서 오사카까지 비행기를 타고 또 몇 번인가의 차를 갈아타고 오오츠의 신라선신당까지 찾아 온 것이 아닌가!

 

신라사브로의 무덤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돌계단을 밟으며 한국인 가슴에 흐르는 민족혼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음미해보았다. 이끼 낀 돌계단 하나하나가 옛 이야기를 말해 주는 듯 무심히 지나 칠 수 없는 세월의 계단으로 다가왔다. 시가현의 삼정사와 신라선신당은 그런 곳이다. 부처의 이름으로 새겨진 옛 조상들의 발자취를 찾는 답사는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의미가 깊다. 일본에서의 의미 있는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시가현 오오츠시의 삼정사를 권하고 싶다. 특히 단풍이 물든 삼정사의 신라선신당에 서면 옛 신라인의 향수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곳이다.

 

★ 찾아 가는 길
*주소 : 滋賀縣大津市園城寺町246 (三井寺, 미이데라, 일명 園城寺, 엔조지)
*가는 길 : 오사카에서 JR니시니혼도카이도혼센‘비와코센’(JR西日本東海道本線‘琵琶湖線’)을 타고 오오츠에키(大津驛)에서 내려 케이한버스(京阪バス)를 갈아타고 미이데라(三井寺)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바로 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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