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지배층과의 이념투쟁일까?

불광출판사 펴냄 / 오윤희 지음 / 20,000원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은 훈민정음으로 하필이면 불교책을 펴냈을까? 역사는 한글로 불교책을 펴낸 까닭이 어리석은 백성으로 하여금 보고 살피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백성들에게 보급하고자 하는 사상이 성리학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유교 경전을 훈민정음으로 출간했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은 불교책을 선택했다. 왜일까.

저자 오윤희(전 고려대장경연구소장)는 “지배층에게 집중되는 지식과 권력과 금력을 백성과 나눌수 있게 되기를 희망했다. 조선조 국가 기틀을 잡은 사대부들의 정신이 매너리즘에 빠지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유생들을 경각시켜야할 필요를 느꼈다.”고 주장했다.

즉 세종은 지배층인 사대부의 특권을 견제하기 위해 백성을 깨우쳐야할 상황에서 백성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불교를 쉽게 알리고자 한 것이므로 훈민정음 언해불전은 지배층의 특권을 허무는 이념투쟁이고 계급투쟁의 도구가 된다.

정도전의 〈불씨잡변〉을 비롯해 조선의 선비들은 불교를 허무의 종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불교는 선비들이 믿는 하늘이나 운명, 변하지 않는 성품 따위는 믿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모두 중생의 의식이 지어낸 망상이라 허망하다고 주장한다. 조선의 선비들은 그런 불교를 이단으로 배척했다.

역사 속에서 가장 명군으로 손꼽히는 세종은 이러한 사대부들의 숙원인 억불 정책을 받아들여 불교의 기반을 송두리째 와해시킨 군왕이다. 수없이 많은 불교의 종파를 통폐합 했다. 그런 세종이 불교 책을 읽고 펴냈다는 것은 당시로서 가히 혁명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세종을 이토록 변하게 했을까? 불교가 무엇이기에 세종은 신하들의 입까지 막았을까? 오윤희 작가는 불교를 억압한 조선 왕조가 불경을 간행한 배경이 궁금해, 주관적 견해를 가미하고 한줄씩 보이는 역사 기록을 분석해 〈왜 세종은 불교 책을 읽었을까〉를 펴냈다.

언해불전의 간행은 세종의 유지를 받은 정종과 세조의 노력으로 1461년 세조 즉위 7년에 불경을 간행하는 간경도감(刊經都監)을 세우고 언해본(諺解本) 불전을 간행했다.

저자는 “세조가 간경도감을 세워 여러 경전을 보급한 것은 세종의 유훈을 따랐기 때문”이라며 “무조건 ‘안 된다’는 상소만 올리는 사대부들에게 선왕의 유지라는 사실을 확인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언해불전은 단순히 불경을 훈민정음으로 해설한 책이 아니다. 〈능엄경언해〉를 비롯 언해불전 다수의 핵심 내용은 “누구나 보아 살펴 사랑하면, 즉 관찰하고 사유하면 똑바로 보고 똑바로 생각할 수 있으며 그렇게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이는 하늘이 신분을 결정한다는 당시 유교사회 원리에 배치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어리석은 백성을 위해 언해불전을 발간했다면 이해하기 쉬우면 쉬울수록 좋았을 것이다. 따라서 언해불전은 어려운 개념어와 추상적인 말 보다는 생생한 동사, 형용사, 부사 같은 서술어와 수식어로 쓰여져 있어 책 출간의 의미를 알수 있게 한다.

저자 오윤희는 다른 한편으로 “언해불전의 주 타겟은 유학자들이었을 것이다”고 추정하며 그 이유로 “우리말 불경 주석을 보면 유학자들에 대한 불평이 많이 담겨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볼 때 “언해불전은 종교책이라기 보다는 당시의 지적 사상적 지형도를 알수있게 하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세종이 가진 지적 성향과 군주로서의 정치적 성향이 담긴 언해불전을 보지 않고 역사 기록만으로 세종을 평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만약 세종이 유학자를 타겟으로 언해불전을 발간했다면 한문에 능통한 유학자들이 잘 읽을 수 있는 한문불전을 발행하면 될 일이지 굳이 언문으로 발행해 유학자들이 읽기를 희망했다는 것은 모순이다.

그만큼 아무리 유학자들을 타겟으로 언문불전을 발간했을 지라도 언문불전이 유학자들에게 미친 영향은 미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는 300여질 발행된 언문불전이 주로 사찰에 보급됐다는 사실에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세종이 언문불전을 발행을 하고자 했던 것은 자신의 내면적 종교적 성향이거나 유학자들의 특권을 인정하지 않고 백성과 함께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는 정치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