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에 비친 단아한 모습 ‘경탄’

하늘은 높고 바람은 서늘하다. 어느새 해가 짧아졌는지 눈을 뜬 아침은 아직 깜깜하지만 맑은 공기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청명한 기분으로 맞이한 제52회 석불친견법회는 그래서 더 향기로웠다.
5일 석불선양회 회원들과 함께 호국불교의 상징 남한산성 내 망월사·개원사·만해기념관, 그리고 하남시의 다보사·선법사까지…. 경기도 일대의 주요불교문화를 찾아 석불을 친견하고 예경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남한삼성은 조선 인조대왕 때 벽암각성 선사 등 승려들이 구국승병으로 싸웠던 호국불교의 본거지다. 남한산성 내에는 아홉 개의 사찰이 있다. 그 중 가장 역사가 길고 규모가 큰 호국대찰이 바로 망월사다.

호국대찰 망월사·참선도량 개원사
망월사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성을 정하면서 한양 장의사(壯儀寺)를 해체하고 그곳의 불상과 금자화엄경(金字華嚴經)·금정(金鼎) 1좌를 남한산성 내 망월암으로 옮기면서 창건된 사찰이다. 병자호란·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폐허가 됐다. 현재의 전각은 주지 성법스님이 1990년대에 중창한 것. 경내 13층 석탑은 원형·6각·8각을 혼합한 것으로 인도 간디 수상이 모시던 석가모니 정골사리가 봉안되어 있다. 남한산 산기슭에 아늑하게 안겨있는 망월사지는 경기도 지정기념물 제111호다.
호국대찰을 지키고 있는 성법스님의 전언이 아직도 귓가에 머문다. “제 나라 역사도 제대로 모르는 것들이 무슨 일을 하겠느냐.”
성법스님의 법문에 한창 빠져 있다보니 일정이 늦어졌다. 시간에 쫓기며 청량산 개원사로 향했다. 개원사는 남한산성 내에서 가장 고즈넉한 참선도량이다. 고려시대 불상으로 추정되는 석조약사불좌상과 입상이 전각에 봉안되어 있다. 정갈한 개원사에서의 짧은 시간을 아쉬워하며 만해기념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만해기념관·힘찬 기상 다보사
전보삼 교수가 건립한 만해기념관은 만해 한용운 스님의 독립운동과 불교사상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선사해 주었다. 모두 전 교수의 설명에 몰입해 시간가는 줄 몰랐으니, 이날 만해스님의 뜻은 다시 한번 회원들의 마음 속에서 살아났으리라.
하남시 춘궁동 동사지 다보사는 백제시대부터 융성했던 큰 절이었는데 지금은 고려시대 때 건립된 대웅전과 3층·5층석탑이 남아있을 뿐이다. 나란히 서 있는 이 두개의 석탑은 경쾌하면서도 힘찬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춘궁리 사지에서 출토된 철조석가모니불좌상(보물 제332호)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다보사에는 좌대의 흔적만이 남아있다. 본존불의 하대석은 직경 5.1m로 당시 최대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법사에서 만난 약사여래불
이번 석불순례법회의 마지막 친견석불은 하남시 선법사의 태평2년명 마애약사여래좌상(보물 제981호)이었다. 바위 남쪽면에 전체 높이 93cm로 새겨져 있는 이 마애불은 보존상태가 좋고 만들어진 연대(태평 2년)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어 고려초기 불상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부드러운 얼굴·가지런한 옷차림 등 그 단아한 모습에 소원을 빌면 다 이루어질 것 같은 환희심을 느꼈다. 약사여래 가까이에는 폭포가 있고 그 아래로 약수가 흐른다. 날이 가물어도 약수의 양은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하니 부처님의 가피가 흠뻑 서려있는 물인 듯 싶다. 약수를 마시며 불현듯 올려다 보니 연좌에 앉아있는 약사여래의 표정이 한없이 자애롭다.
마애불전에서 ‘약사여래본원경’을 봉독하고 하루를 마감하는 석불선양회 회원들의 표정은 몹시 밝았다. 53차 석불친견법회를 기약하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성불하세요~” 경기도 하남=서경혜 기자 khseo@jub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