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민복 시인 불교 시집 발간

말랑말랑한 강화도 개펄의 힘
“그림자로 원(圓)만해진 시편들”

함민복 시인이 불교적 사유가 깊은 시집 《말랑말랑한 힘》을 발표했다.
‘말랑말랑’과‘힘’이라는 상반된 이미지의 두 단어를 합쳐 시집 제목을 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시집을 읽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말랑말랑한 힘은 시인이 살고 있는 강화도 개펄의 힘을 일컫는다.
이와 관련 시인은 “말랑말랑한 힘은 뻘이 사람의 다리를 잡는 부드러운 힘”이라며 “문명화 속의 사람들은 시멘트를 꺼내서 딱딱한 수직을 만들지만 뻘 속의 생명체들은 그저 구멍을 파고 들어갈 뿐”이라고 개펄예찬론을 펼쳤다. 이러한 주제의식이 잘 표현된 작품이 〈뻘밭〉.

부드러움 속엔 집들이 참 많기도 하지/ 집들이 다 구멍이네/ 구멍에서 태어난 물들/ 모여 만든 집들도 다 구멍이네/ 딱딱한 모시조개 구멍 옆 게 구멍 낙지 구멍/ 갯지렁이 구멍 그 옆에도 또 구멍구멍구멍/ 딱딱한 놈들도 부드러운 놈들도/ 제 몸보다 높은 곳에 집을 지은 놈 하나 없네

이번 시집의 또 하나의 특징은 불교사상이 승화돼 있다는 점이다. 시집에는 곧잘 ‘그림자’라는 시어가 등장하는데 이는 불교의 공(空) 사상을 담은 것이다. 〈그림자〉 〈환한 그림자〉 〈불탄 그림자〉 〈질긴 그림자〉 〈논 속의 산 그림자〉 등 제목부터가 그렇다.
그중 한 편인 〈그림자〉를 보자.

반쪽 달이 떴다/ 달무리가 둥글다

언뜻 보면 일본 정형시 하이쿠(俳句) 같기도 하고, 선시 같기도 하다. 이 시는 촌철살인의 몇 마디 속에 불법의 오묘한 진리를 다 담고 있다. 반쪽 달이 그림자로 인해(色卽是空을 통해) 온전한 원을 이룬다는(一圓相의 진리를 터득한다는) 내용이 심오하다.
연장 선상에서 쓰여진 다른 작품 〈일식〉도 아름다운 작품이다.

햇살 아래서// 눈물을/ 한두 번 찍었을// 女人의 가녀린/ 반지 낀 손가락/ 끌어 입술에 대보고 싶은//그래/ 그림자도 빛반지를 저리 껴보는구나

‘빛의 그림자’라는 단순한 자연현상에서 ‘햇살 아래서 눈물을 한두 번 찍었을 여인의 가녀린 반지 낀 손가락’을 읽을 수 있는 혜안. 그것이 바로 함민복의 깊어진 시선이다.
말랑말랑한 힘/문학세계사/값 6천원
유응오 기자 arche@jub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