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범교의 ‘다시 읽는 삼국유사’
제8편 - 천사옥대 설화

  제26대 진평대왕은 키가 11자(약 2.2~3.8m, 왕의 큰 키는 국왕의 통치권을 크게 강화시켰다는 뜻 상징)나 됐다.
  하루는 진평왕이 내제석궁(천주사라고도 함)에 행차했을 때 섬돌을 밟으니 돌 세 개가 한꺼번에 부러졌다. 왕이 신하들에게 말하길 “이 돌을 치우지 말고 뒤에 오는 사람들이 보도록 하라”고 했다. 바로 이 돌이 성안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다섯 개의 돌 중 하나이다.
  그가 왕위에 오른 첫해에 천사가 궁전 뜰에 내려와 왕에게 말하기를 “제석천께서 내게 명해 옥대를 전해주라 했습니다”라 하니 왕이 친히 무릎을 꿇고 그것을 받았다.
이러고 난 후 천사는 하늘로 올라갔다. 무릇 교외에서나 종묘에서 큰 제사를 지낼 때는 모두 이 옥대를 사용했다.
  그후 세월이 한참 흘러 고려가 신라를 치려고 모의하면서 왕건이 말하기를 “신라에는 세가지 보물이 있어 침범할 수 없다 하는데,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가?”라고 하였다.
이에 신라의 한 관료가 말하길 “황룡사 장육존상이 첫째이고, 그 절에 있는 9층탑이 둘째며 진평왕의 천사옥대가 셋째”라 하여, 왕건은 곧 그 계획을 중지했다.
정치적 해석
왕건강화와 고려의 신라계승

  진평왕은 진흥왕과 사도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동륜태자의 아들로서 그의 삼촌 진지왕이 축출된 후 열세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따라서 출발부터 정통성에 다소 문제가 있었다. 진평왕 즉위 원년에 상황(제석천)이 천사옥대를 보내 주었다는 것도 천제가 옥대를 내려줄 정도로 정통성이 확보된 신성한 임금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이다.
“왕이 돌사다리를 밟으니 돌 세개가 한꺼번에 부러졌다”나 “교묘의 제사를 지낼 때는 모두 옥대를 찼다”는 것 등은 모두 왕위의 신성함과 권위를 강조하기 위한 의도였을 것이다.
  천사옥대를 비롯한 신라의 삼보(三寶)가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새삼스레 부각된 것은 삼국통일을 한 신라를 계승해 후삼국을 통일하고자 한 왕건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신라 마지막왕인 경순왕으로부터 전해받은 천사옥대를 궁중의 창고에 보관했다는 것은 신라의 전통을 계승하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그뿐 아니라 왕건은 서경에 9층탑을 세웠다. 이는 신라가 9층탑을 세워 삼국을 통일한 것을 본받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신라 삼보에 대한 주목은 그의 후삼국 통일이라는 정치적 염원의 한 표출이었다.

종교적 해석
불교와 무속의 융합

  천사옥대는 불교와 무속의 융합을 상징화한 설화라고 볼 수 있다.
  먼저 불교적인 요소를 보면 진평왕에게 옥대를 내려보낸 상황은 바로 제석천을 가리킨다.
  제석천은 불경에 자주 등장한다. 즉 그는 수미산 꼭대기의 도리천 희견성에 있으며 만민의 선악·사정(邪正)을 잘 아는 하늘의 신이다.
  또한 진평왕이 하늘의 신 제석으로부터 받은 옥대는 불경에 보이는 전륜성왕의 행적을 본 딴 것이다. 전륜성왕은 하늘로부터 일곱가지 보물을 받았는데, 천사옥대 역시 전륜성왕의 7보와 같은 성격의 보물로 여겨진다.
이 설화에 무속적 요소가 반영된 것은 옥대와 교묘의 제사이다. 신라왕의 옥대는 왕의 복식에 어울리게 금과 옥 등 여러 장식을 만들어 매달아 놓은 허리띠이다. 이러한 옥대는 시베리아에 거주하는 종족들의 샤먼이 사용하는 허리띠의 유물로 볼 수 있다. 오랜 옛날 무당들이 허리띠에 청동검 등 여러 물건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던 것은 시베리아 샤먼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진평왕이 받은 천사옥대도 이를 계승했다고 볼 수 있다.
진평왕이 옥대를 메고 지낸 교묘의 제사도 무속과 연관돼 있다. 교묘(郊廟)란 천지의 신과 조상의 신에게 제사지내는 것을 말한다. 천·지·수 및 조상에게 무당들은 굿을 바치고 제사를 드린다. 이러한 교묘의 제사와 옥대는 무속적인 요소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불교의 제석천이 전륜성왕인 진평왕에게 무속의 옥대를 하사한다는 것은 불교와 무속의 융합을 의미한다.
  비록 불교가 법흥왕 15년(528)에 공인되었다고 하나 불교가 민중에게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 오히려 그 당시에는 조상신이나 지역 천신을 섬기고 있어 민중들 사이에서는 불교보다 무속이 훨씬 친숙했다. 그러나 불교는 왕에게는 왕즉불(王卽佛)이라는 논리로 왕건강화에 도움을 주고 평민에게는 누구든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평등사상으로 민중에게 전파되었다.
  이러한 불교는 그 자체의 수용적이고 포용적인 성질로 무속을 흡수·융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