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초기 불법 통해 무명 극복”

‘내가 곧 부처’ 화두 든든한 마음 등대
수양부모협회 후원 등 자리이타행 지속

“지금 이 순간 좋은 뜻과 
  마음으로 발심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행한다면 그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미래의 제 존재를

  형성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하나의 점들이 이어져 선을 이루듯

  부처  님께서 강조하신 진리의 지평은

  우리들 눈앞에 무한대로 
  펼쳐져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 사실을 겨우 깨달았습니다.
  이 사바세계에서 혼자만 괴로운 것이

  아님을, 모든 것이 무상하면서도
  아름다운 것임을 말이지요.”

  얼마 전 종영한 화제의 드라마 SBS ‘여왕의 조건’을 본 사람들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우리네 엄마들처럼 푸근하면서도 아직 사춘기 소녀의 순수를 간직한 듯 수줍은 귀여움을 선보인 오영순 역의 권귀옥이라는 배우를 말이다. 아침드라마 사상 초유의 시청률을 기록한 이 작품을 통해 그녀는 시청자들의 뇌리에 나이 듦의 아름다움과 연기에 대한 열정에 대해 사유케 했다.
  탤런트 권귀옥. 과거의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녀의 ‘화려한 귀환(?)’에 자칫 의아스런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故 이기동 씨와 더불어 배삼룡-구봉서·서영춘-백금녀·장소팔-고춘자 등으로 이어지는 한국 코미디계의 명콤비로서 이른바 70∼80년대를 주름잡은 스타 코미디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본업이 탤런트(70년 MBC 탤런트 공채 2기 출신)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더구나 20여 년 간 미국생활을 한 그녀가 독실한 불교신자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드물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방송을 접고 돌연 미국으로 떠났을 때 저는 하루하루가 정말 고통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극도의 우울과 불안으로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생지옥을 느끼던 차에 운명처럼 한국에서 건너온 한 비구니 스님을 알게 됐고 스님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했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외로운 타국생활에 가장 큰 위안이었으며 그야말로 감로수와도 같았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스타가 돌연 미국행을 결심하기까지는 남모를 아픔과 사연이 있을 것이다. 또한 언론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화려한 연예인으로서의 삶이 지극히 평범하고 소소한 일반인의 그것으로 대체되었을 때의 그 허허로움과 갈증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권씨가 속세의 온갖 미혹 속에서 여유와 안정을 되찾기까지는 불교의 역할이 지대하다.
  당시 그녀를 구한 귀인은 서울 보문동 보문사의 인권스님으로 스님은 해외포교를 위해 1980년대 중반 미국 LA에 파견됐고 그 인연이 이어져 권씨에게까지 닿았던 것이다. 또한 권씨는 스님과 속가나이가 비슷해 더욱 친근하게 여겨졌다고 말했다.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친언니처럼 자신을 돌봐준 스님에 대한 감사함은 세월이 지나도 좀체 줄어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권귀옥 씨는 미국생활을 회자하며 얼마간 들떠 있었다. 아무래도 미국생활은 그녀 인생의 한 전환점과도 같은 시간이었음이 분명했다. 그녀는 인권스님을 통해 불교를 본격적으로 접했고, 스스로 일본작가가 쓴 《비교종교학》 등의 저서를 탐독하며 불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갔다. 당시 이후로 그녀는 ‘내가 곧 부처다’라는 말을 가장 좋아했다. ‘내가 곧 부처’라는 일념으로 낯선 이방인들과 친교를 쌓기 시작했고 딸 학교급식 등 각종 자원봉사에 참여하며 이민 초기의 고질적 우울증세를 말끔히 극복할 수 있었다.
  “제가 알고 있는 불교는 거창한 교리가 아닙니다. 불교는 하나의 종교라기보다는 학문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평생을 두고 끊임없이 자신을 수양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숭고한 작업이지요. 내가 지금 이 순간 좋은 뜻과 마음으로 발심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행한다면 그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미래의 저를 형성합니다. 마치 하나의 점들이 이어져 선을 이루듯 부처님께서 강조하신 진리의 지평은 우리들 눈앞에 무한대로 펼쳐져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 사실을 겨우 깨달았습니다. 이 사바세계에서 혼자만 괴로운 것이 아님을, 모든 것이 무상하면서도 아름다운 것임을 말이지요.”
  2000년 새 밀레니엄의 도래와 함께 20년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권씨는 미국에서 쌓았던 자리이타행을 바탕으로 더욱 활발한 사회활동을 준비한다. 그녀가 선택한 것은 바로 버려진 아이들을 위탁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수양부모에게 연결시켜주는 (사)한국수양부모협회.
  그녀는 평소 친분이 있던 주한 호주대사관 공보실장 박영숙 씨가 회장으로 있던 (사)한국수양부모협회에서 후원회 부회장을 맡으며 물심양면으로 홍보 활동에 앞장선다. 그녀는 평소 아이를 사랑해왔다. 그녀는 미래의 기둥이 될 아이들이 방치되는 현실을 견딜 수 없었고 일선에서 실태를 접하면 접할수록 한국사회의 아동복지현실이 매우 열악함을 절감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은 인생을 낙엽이 퇴비가 되듯 늙고 싶다는 불자탤런트 권귀옥 씨.
  이미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적기라는 말이 있듯, 인생의 황혼기에서 한 사람의 엄마로서, 연기자로서, 자원봉사활동가로서 각 영역의 최전선을 누비고 다니는 그녀의 뜨거운 열정과 도전정신에 절로 감탄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여전히 전성기 때의 아름다움과 더욱 원숙한 유머와 재치로 무장한 그녀의 매혹에 앞으로도 시청자들은 많은 관심과 사랑으로 화답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그녀 앞길에 부처님의 가호가 늘 함께 하길 기원해본다.

글= 장세훈 기자 xsatin@jubul.co.kr
사진= 이한규 업무국장 lhk0108@jub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