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거사불교의 현장을 가다-절강성 천태산

“볕 바른 양지에 누더기 안고 앉아 옛 사람 시를 한가로이 뒤적이네”

지자대사가 창건한 오백나한 도량  천태종 한산사
시선(詩仙) 한산이 소요하며 절창 부르던 은신처

전설적인 은자(隱者)인 한산(寒山)의 신비한 행적과 시는 비단 역대 동양삼국의 선가(禪家)뿐만 아니라 도(道)·유가(儒家)의 수도자와 일반 식자층에 이르기까지 널리 회자·애송되고 있다. 또한 제왕으로부터 산림에 은거했던 헤아릴 수 없는 무명 도인들은 물론이고 근자에는 구미(歐美)인들에게까지 광범위하게 전파됐다. 1970년대에는 무소유의 대자유를 선망했던 히피들의 정신적인 우상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하지만 천하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던 한산이지만 아직까지 그에 대한 자세한 내력은 물론 본래의 성·이름조차도 밝혀내지 못한 상황이다. 이러한 의구심을 풀기 위해 그 동안에 숱한 학자들은 그가 남긴 시·각종 문헌을 바탕으로 각양각색의 추론을 제기하며 그에 대한 실상을 밝히고자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견강부회(牽强附會)한 것들로 만인에게 공감을 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필자도 늘 애석하고 궁금하게 여겨 ‘한산이 은거했다’던 중국 천태산(天台山)을 향해 나섰다. 
중국 동남부 절강성(浙江省) 천태현(天台縣)에 자리잡고 있는 천태산은 무릉도원처럼 수려한 자연경관을 지녔다. 그 품안에는 전설 속의 신선과 선녀들이 살았다던 신비한 동천(洞天)이 있다. 동천에는 불로장생의 약초가 지천으로 널려 있어 고대부터 숱한 도인들이 즐겨 찾아 수련했던 곳이라고 한다.
중국 한나라 명제 때 양주 회계군 섬현에 살던 유신(劉晨)·완조(阮肇)가 약초를 캐러 갔다가 길을 잃었으나 아름다운 선녀들과 인연으로 잠시 그녀들의 거처에 머물다 고향 생각이 간절해 속세로 돌아왔는데 이미 3백년이 지났다는 설화가 있다. 또한 도가의 저명한 연금술사 갈현(葛玄: 164~244)이 이곳에서 단약(丹藥) 제조에 성공해 신선이 되어 승천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는 명당 중에 명당이다.
이를 계기로 도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천태산은 점차 도교 남종(南宗)의 성지로 탈바꿈했으며 천하제육동(天下第六洞)인 ‘상청옥평치천(上淸玉平之天)’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또한 천태산은 오백나한의 도량이자 지자(智者: 538~598) 대사가 몸소 천태종(天台宗)을 창건했던 곳이며 기라성 같은 대덕고승이 운집해 대대로 불법을 선양했던 불국낙토(佛國樂土)였다. 때문에 많은 수도자들이 천태산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수도처로 삼으려고 했는데, 한산 역시 그러했다. 그는 시를 통해 “그윽한 살 만한 땅 가려잡으니, 천태(天台)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잔 나비 울음 골짝 안개에 차갑고, 둘레 산 빛은 싸리문에 와 닿는다. 나뭇잎 꺾어 소나무 지붕 덮고, 연못 만들어 시냇물 끌어온다. 이미 모든 일 쉬어서 만족해라. 고사리 캐며 남은 삶을 보내리라”라고 표현했다.
천태산에 터를 잡은 후 한산은 천태산에 관해 “우리 집은 본래 천태산에 있나니, 구름 길에 연기 깊어 손님이 없네. 천길 바위산은 깊어 숨을 만하고, 만 겹 골짝에는 돌 다락의 대(臺)가 있다. 화건(樺巾)에 나무신으로 물가 거닐고 베옷에 여장으로 산을 돌아오나니, 인생의 덧없음을 스스로 생각하면 소요하는 즐거움은 진정 좋은 일이네”라며 지족자락(知足自樂)의 생활을 즐기고자 했다. 그러나 그곳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과 매정한 말로 한산은 상심하게 된다. “많은 천태 사람들, 이 한산자를 몰라보네. 더구나 그 뜻을 알지 못하고, 부질없는 말한다 서로 일컫네” “한산이 무슨 말을 내면 그만 모두 미치광이라 하네, 일이 있으면 맞대놓고 말하기에 그러므로 항시 남의 원한을 산다” 등등 도처에서 한산을 비판하고 나섰다.
그래서 한산은 천태산에서 편안하게 수도할 자신만의 은신처가 절실했다. 그래서 찾은 곳이 한암(寒巖)이었다. 한암은 천태산의 주봉에서 한참 떨어진 외진 곳이었으나 한산은 몹시 만족해 했다. 그는 시에서 “한암(寒巖)은 깊어서 더욱 좋아라. 이 길에는 다니는 사람 없구나. 흰 구름은 높은 산에 한가롭고, 외로운 잔 나비 푸른 골에 휘파람 해, 내게 친할 것 또 무엇 있으랴. 뜻을 펴며 스스로 늙어 가리라. 얼굴은 철을 따라 변하더라도 부디 마음 구슬은 보전해야 하느니라”라고 표현하며 한암을 은신처로 만족스러워 했다.
한암은 현재 천태현 시내에서 서남쪽으로 35㎞쯤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한암이 있는 산봉우리는 그리 높지는 않으나 병풍처럼 길게 펼쳐져 있는 돌산이다. 주변의 자연환경은 우리의 한적한 산촌 마을의 풍광과 다를 바가 없었고, 올라가는 길옆에는 듬성듬성 초가 산간 몇 채와 과수원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또 그 사이마다 산에서 드넓은 들판을 향해 내려오는 계곡물은 마치 지평선과 맞닿을 듯이 넘실넘실 흘러 간다.  
한암에는 한산이 거주했다던 커다란 동굴이 있다. 그 높이가 대략 15m·넓이는 48m정로 족히 수십 명도 거주할 수도 있는 아늑한 곳이었다. 동굴의 벽 위에는 ‘한암동천(寒巖洞天)’ ‘소청량(小淸凉)’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고 또 송나라 때 대 서예가인 미불(米)이 ‘잠진(潛眞)’이라 글을 쓰고 난 뒤부터 ‘잠진동(潛眞洞)’이라고도 불려졌다고 한다. 동굴 한 가운데에는 ‘연좌석(宴坐石)’이라 불리는 넓적한 큰 바위 하나가 있다. 이 바위는 한산·습득(拾得)·풍간(豊干) 선사 등 ‘천태삼성(天台三聖)’이 모여 도담(道談)을 즐겨 나누었던 곳이라 한다.
필자도 잠시 그 바위에 앉아서 한산이 이 곳에 은거하면서 지은 시 한 구절을 연상해본다. “한암(寒巖) 밑에 깃들어 살면, 별스레 그윽한 일 새삼 신기해… 맑은 개울물에 발을 씻고 한데 뒤섞어 아욱을 국 끓인다. 볕 바른 양지에 누더기 안고 앉아 옛 사람 시를 한가로이 뒤적이네.” 
여행칼럼리스트 김영진 oky333@hanmail.net

이번호부터 중국의 전설적인 거사와 선승인 한산(寒山)·습득(拾得)·풍간(豊干)·포대(布袋)의 은둔지였던 절강성의 천태산(天台山) 일원 등을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