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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물에 휩쓸려간 청춘 그곳엔 '홍련'이 피어나고...

50년전 월정사에 무슨 일이?, 1965년 고대불교학생회 오대산 참사
한기선 | 2015/07/20 20:10

피로 얼룩졌던 50년전 월정사 여름 수련대회

회향 앞두고 10명사망, '조계사'서 영결식

"희생된 선배들의 뜻 받들어 불교중흥" 다짐

월정사, 대불련 중흥 주춧돌 놓는 성지 추진

대학생불교연합회가 태동하던 1965년 7월 5일 고려대학교 불교학생회 회원 38명은 10일간 예정으로 제1차 하계수련대회를 떠났다. 탄허스님을 지도법사로 강원도 진부면 오대산 월정사에서 고불회 결성후 처음으로 하계 수련대회를 가졌다.

 

사찰에서의 수련대회가 흔치 않던 당시 상황에서 수련대회를 떠나는 고불회 회원들의 마음은 구도의 길을 가는 출가자의 마음으로 충천해 있었다. 아침 3시에 기상, 새벽 4시30분 예불과 좌선에 이어 6시에 아침을 먹었다.

 

이어 7시에는 경전독송에 이어 오전 11시 반까지 탄허스님으로부터 동양철학, 역학 등의 강의를 들었다. 손명헌, 김영두 지도교수로부터는 대승불교 강의를 듣는 등 하루에 6시간씩 수강하며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켰다. 당시 배움에 목말라했던 회원들이 강의를 들으며 느꼇을 환희심은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학생들은 엄격한 금욕생활과 귱율 속에서 세속을 떠나 출가자와 같은 생활을 했다. 매일 반복되는 수련을 끝내기 하루 앞두고 마지막으로 월정사를 나섰다. 오대산 일대의 암자를 참배하기 위함이었다.

 

그때 상원사에서는 원보산스님의 다비식이 진행중이었다. 상원사에서 장례식에 참석한 후 3팀으로 나누어 불적과 비로봉을 둘러본 뒤 제1진은 오후 4시 10분 경 월정사에 도착하고, 이보다 30분 늦게 상원사를 출발한 제2진 13명(손교수와 여학생 7명, 남학생 5명)은 급류를 만났다.

 

처음에 물에 약간 잠겨있는 첫 번째 다리를 건너자 마자 다리는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이들 일행은 폭우를 무릅쓰고 내려가다 두 번째 계곡을 만났다. 마의 계곡으로 이름난 이곳 등피골은 상원사와 월정사의 중간지점인데 폭우로 인해 계곡이 깊이 80 ㎝, 폭 20m로 급격히 늘어났다. 수량이 급증하자 계곡에는 주먹만한 돌들이 떨어질 정도로 물살이 사나워 졌다.

 

이에 일행 13명은 계곡을 건너가느냐 아니면 안개가 심하게 낀 산길로 돌아서 가느냐는 것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젊은 학생들은 급류의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고 젊은 패기로 건너가기로 결정했다. 산질로 돌아가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일정에 차질이 잇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때의 젊은 패기가 화를 일으키는 단초가 될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들은 단단히 스크럼을 짜고 건너가면 충분히 견딜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급류를 보면서 누군들 두려움을 느끼지 않겠는가. 당시 여학생들은 물론 남학생들도 경련이 일정도로 긴장돼 있었다고 한다.

 

일행은 오상대(당시 경3), 윤복순(상3) 군을 선두로 계곡을 건너기 시작했다. 가운데는 여학생들이 서고 끝에는 박찬영(화공) 군이 손교수를 부축했다. 선두 오상대군이 2/3 지점에 도달했을 때 중간에 있던 한 여학생이 미끄러져 넘어지자 여학생들은 스크럼을 짠채로 급류에 휩쓸렸다.

 

이렇게 지도교수를 포함 13명의 학생이 급류에 떠내려갈 때 맞은 편에서는 3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지켜보고 있었으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손쓸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 떠내려가던 13명 가운데 손교수와 두명의 학생(박찬영, 심재학)은 계곡의 풀뿌리를 잡고 견디다 구사일생으로 구조됐고 나머지 10명(남3명, 여7명)의 학생들은 무참히 희생됐다.

 

당시 희생된 10명의 희생자는 윤복순(상과 3), 정명훈(경영 2), 김귀임(국문 2), 오상대(경영 3), 민영혜(국문 3), 박하경(사회 2), 한춘자(국문 3), 안경희(국문 3), 이희임(국문 2), 조화연(국문 3) 등이다.

학생들의 조난이 알려지자 먼저 월정사에 함께 수련대회를 왔던 학생들은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모교인 고려대학에도 참변 소식이 전해졌다.

 

수련대회 참가 학생들은 급류에 떠내려간 시신을 수습하는데 애를 먹었다. 급류에 휩쓸린 시신들을 찾는 것조차 힘겨웠다. 더구나 수습된 시신들의 모습을 본 학생들은 눈을 뜰수가 없었다.

 

급류에 떠내려가면서 바위에 부딪힌 시신들은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팔이 떨어져 나가고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심지어는 목조차 없는 시신도 있었다. 누구도 이 참혹한 시신들을 앞에두고 오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고려대학교에서도 시신 수습을 돕기 위해 학생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학교에서 준비한 버스에 올라탔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도와야 한다는 일념 뿐이었다고 한다. 현장에 도착한 유가족들은 자신들의 자식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만큼 시신의 모습들은 처참했다.

 

유족들은 자식들의 신체적 특징이나 수련대회 떠날 때 입었던 옷을 떠올리며 겨우 자식을 확인하는 모습이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수습된 시신들은 마대 자루에 넣어져 서울로 향했다. 그리고 서울 조계사에서 영결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당시 고대 총장이었던 유진오 총장은 떠나는 학생들을 보내지 못하고 관을 잡고 통곡했다. 이를 보는 사람들은 모두 눈시울을 붉혔다. 이렇게 전대미문의 월정사 참사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떠나간 학생들을 생각하는 고불회 동료들의 뇌리에는 언쩨까지나 잊혀지지 않는 커다란 상흔을 남겼다. 살아 있다는 것이 죄스러울 정도였다. 이러한 마음 때문에 떠나간 이들의 영혼을 천도해 줘야 한다는 생각들이 뜻을 모았고, 희생된 자리에 탑비라도 세워야 한다며 연화탑 건립 추진위원회가 결성됐다.

 

그리고 1년 후인 1966년 7월 17일 오대산 등핏골에 연화탑을 세우고 탑 앞에서 천도재를 지낼 수 있었다. 이것이 연화제의 시작이다. 그후 수없이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고불회 학생들의 연화제는 한해도 거르지 않고 오대산 월정사 등핏골 연화탑 앞에서 제사를 지냈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 올해로 50년이 됐다. 그리고 50주기 연화제를 기해 대학생 불교운동을 활성화 시켜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50년전 고려대 불교학생회 학생들이 추구했던 구도 정신을 이어 월정사에서 청년불교 중흥의 기초로 삼고자 하는 논의가 일고 있다.

 

이러한 생각들이 이번 고불회 연화제를 고불회 교우회와 대불련, 대불련 총동문회가 공동으로 이 행사를 주최하게된 연유이다. 백효흠 대불련 총 동문회장은 지난해 분열된 대불련 총동문회를 맡으면서 대불련이 활성화 되지 않고서는 불교의 발전을 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대불련을 적극 지원하고 나섰다.

 

각 대학의 불교 학생회와의 연계를 통해 전국적인 네트웍을 구축하고 서로 협력해 대불련을 활성화 시키고 불교 발전을 이루겠다는 의지 때문이다.

 

그리고 월정사의 정념스님은 5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동안 고불회 연화제를 묵묵히 지원해온 월정사가 이제는 대학생 불교의 성지로 발돋움하고, 대불련 중흥의 주줏돌이 될수 있도록 성력화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월정사에서 가진 50주기 연화제를 기해 ‘연화제와 대학불교 운동’을 주제로 주지 정념스님과 가진 대담을 통해 구체화됐다. 이날 대담자리에는 월정사 주지 정념스님을 비롯 현 고불회 회장 정원식군 고불회 교우회 대표로 법만 스님, 63학번 서상욱, 61학번 이채형, 72학번 최옥화, 74학번 이연창, 76학번 이동식, 68학번 이경, 78학번 이건식, 언론대표 이학종 등 11명이 대담자로 참석했다.

 

대담자들은 과거의 사고와 연화탑 건립의 인연을 전하며 연화제 역사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국 대학생 불교 운동의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50년 동안 선배들의 구도의 길을 떠올리고 추모하며 맺어진 고불회 선후배간의 끈끈한 유대가 결국 대학생 불교 운동의 주춧돌이 될 것이라는 기대이다.

 

대담에 참석했던 법만 스님은 “탄허 스님을 비롯해 대학생 포교에 힘썼던 큰 스님들과 희생된 선배님들 뜻을 받들어 한국불교 중흥의 역할을 해야 할 때”라며 “연화탑을 모신 월정사를 청년 불교 구도의 성지로 만들어야 한다. 50년간 연화제를 모신 월정사는 그 선봉을 이끌 충분한 힘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정념 스님은 침체기를 맞고 있는 대학불교 역할에 대해 논하며 연화제와 월정사가 대학불교 발전의 원동력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며 “월정사도 연화제와 50년의 연을 함께한 만큼 연화제가 하나의 성력의 장소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한편 고불회와 고불회교우회는 연화제 50주기를 맞아 추모지를 발간했다. 추모지에는 고불회 연혁과 연화제 역사, 사건 당시의 기록 등이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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