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

정호승 作

눈길에 난 발자국만 보아도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눈길에 난 발자국만 보아도
서로 사랑하는 사람의 발자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은 발자국들끼리
서로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것을 보면

남은 발자국끼리
서로 뜨겁게 한 몸을 이루다가

녹아버리는 것을 보면

눈길에 난 발자국만 보아도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에게 세상은 애인이 귓가에 속삭이는 달콤한 몇 마디 사랑말이다. 사랑말과 함께 귓가에 와닿는 따사로운 입김이다.
연인은 그들의 세계 속에서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연인은 애인의 눈 속에서 작은 계곡을 흘러내리는 물결무늬를 발견하기도 하고 겨울 유리창에 낀 반짝이는 성애조각을 찾아내기도 한다. 가끔 아픈 기억을 보기도 하고 보듬어야 할 상처도 발견한다.
연인들의 세계에서는 그 둘만이 온전히 서로의 숨소리를 듣기 때문에 한없이 좁다. 하지만 그들의 세계는 너무 환해서, 연인들은 언제나 거리에 발자국을 남기고 걸어간다. 팽팽한 아스팔트와 딱딱한 시멘트 위에도 발자국을 남긴다. 아무것도 뜨지 않는 그믐밤에 하얀 기억의 발자국을 남긴다. 가끔 어떤 연인들은 역사라는 기나긴 시간의 기록에 발자국을 남기기도 한다.
 표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