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현 | 2008/11/10 11:38

난타 존자가 불교 처음 전한 가람 불갑사
백제불교최초도래지 ‘사면대불탑’ 웅장

전남 영광 백제불교최초도래지 전경

굴비의 마을 전남 영광으로 가는 길. 석불선양회 100회 순례지는 백제불교도래지와 불갑사. 지난 11월 5일 석불선양회 회원 35명은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세운 것으로 전해지는 천년 고찰 불갑사를 찾았다. 부처님의 불(佛)자와 육십갑자의 으뜸인 갑(甲)자를 합친 불갑사.

불갑사는 삼국시대 백제에 불교를 처음 전래한 인도스님 마라난타존자(摩羅難陀尊者)가 남중국 동진(南中國 東晋)을 거쳐 백제 침류왕 1 년에 영광 땅 법성포로 들어와 모악산에 최초로 사찰을 창건했다고 전한다. 법성포(法聖浦) 또한 창건설화에 연유한 지명이다.

불갑사의 기원을 생각하니 역사라는 것이 실로 가뭇없이 여겨졌다. 백제가 흥하고 망하고, 백제유민이 신라로 흘러들고,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흥하고 망하고 고려와 조선이 흥하고 망하고… 국사교과서를 읽어나가듯 우리역사의 국가이름을 헤아리다보니 중국의 역사에서 종적도 없이 여진이나 거란 민족의 이름이 떠올랐다. 역사는 결국 온갖 물줄기를 품고 흘러가는 강물과 같은 것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오랜 후 누가 우리의 삶과 언어를 기억할 것인가. 사라진 변방 오랑캐의 언어처럼 흩어지고 말 것이다 생각하니 아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새 회원들은 불갑사에 닿아 있었다. 이 절이 제불사(諸佛寺)의 시원(始原)이요 으뜸이라니. 불갑사 천왕문을 지나자 사천왕상이 출입하는 회원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사천왕상의 위엄을 뒤로하고 회원들은 대웅전으로 들어가 바로 예불을 올렸다.

불갑사 대웅전(보물 제830호)의 부처님은 여느 부처님 진영과 다르다. 찬찬히 살펴보면 수미단 위에 특이한 석가모니불대좌의 조각을 볼 수 있다. 양 옆 협시 불대좌와는 사뭇 다른 더욱 장엄된 대좌에 난간이 둘러 쳐져 있다. 용들이 입으로 물고 부처님을 떠받히는 장엄한 모습을 한 난간을 회원들이 주의깊게 살펴본다.

권중서 조계종불교문화해설 전문 포교사는 불갑사 대좌에 대해 불교 미술의 아름다움과 해학이 잘 나타나는 조각이라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대좌 난간 중앙에는 용이 아닌 용의 얼굴 보다 작은 크기의 사자가 대좌의 주인 행세를 하며 두 발로 서서 두 손으로 대좌의 난간을 살짝 들고 있다. 주변의 용들은 대좌 밑에서 나와 목을 빼서 강한 이빨을 드러내어 난간을 물고 젖 먹던 힘을 다해 부처님을 받들고 있으나 정작 대좌 중앙의 사자는 힘도 들이지 않고 살짝 대좌 난간을 들기는커녕 손만 대고 잘난 듯 웃고 있다”며 해학적 조형미가 뛰어나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경전의 내용을 이해한 스님들이 조각한 조선시대의 불갑사 대좌가 참으로 재미있고 익살스러운 해학과 유머가 넘치는 조각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불갑사 삼세불좌상

회원들은 삼세불좌상(보물 1377호)아래서 어깨를 맞대고 앉아 한 시간 가량 예불공양을 올렸다. 회원들의 낭랑한 염불소리가 불갑산 자락에 울려 퍼지니 분주히 도토리를 모으던 다람쥐·청설모도 염불소리에 귀 기울이는 듯했다. 불갑사를 둘러보던 관광객들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회원들과 함께 예불을 드리기도했다. 이날 석불선양회 이귀인 회장은 순례 100회를 맞아 회원들에게 직접 108염주를 목에 걸어주며 “앞으로도 불법 수호와 홍포에 앞장서는 단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더욱 정진하자”고 서원했다.

불갑사 경내에는 30촉 백열등만큼이나 붉은 감들이 매달려 있는 감나무가 있었다. 까치밥을 주고 남을 양이었다.
팔상전을 비롯해 칠성각·일광당·명부전·만세루·범종루·향로전 등을 두루 살펴보았다. 경내를 둘러보던 중 기자는 각진국사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7백년 된 참식나무(천연기념물 112)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1백년이라는 말에도 영원의 뜻을 읽는데 무려 7백년이라니. 7백년 우리의 아버지와 그 아버지와 종조 어른까지도 두루 살고 갔을 시간이다.

고려말 각진국사가 불갑사에 와서 주석하기 전 젊은 시절에 행각하며 잠시 머물렀을 때 꿨다는 꿈 얘기가 떠올랐다. 각진국사는 꿈속에서 “스님은 다음에 마땅히 이 절에 머무실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노인을 만났다고 한다. 불갑사의 중창은 고려말 1341년 각진국사가 주석하면서부터 이루어졌다. 각진국사는 송광사의 수선사 제 13 세주(世主)로 계시다가 만년에 하산소(下山所)가 왕명에 의해 불갑사로 정해지자 평소 따르던 제자 1천여 명이 몰려들어와 총림(叢林)을 이루게 되었고, 이로부터 중창불사를 시작해 5백여 칸의 거찰(巨刹)을 이뤘다. 각진국사에 의해 가람이 장엄하고 수려하게 가꾸어진 후 불갑사는 불지종가(佛之宗家)라고 불리워졌다.

석불선양회 회원 40여 명이 대웅전에서 예불을 드리고 있다.

마라난타와 각진국사에 의해 번창한 백제불교의 1번지. 하지만 불갑사의 역사에도 어두운 그늘은 있었다. 지금도 불갑사 경내에는 1934년 가을 야간 도굴사건과 6.25 동란의 흔적이 어렴풋이 남아있었다. 다시금 불갑사를 일으킨 것은 지선스님. 1974년 지선스님은 범종루와 범종을 조성했고 1976년경부터 수산지종(壽山知宗) 원로스님이 주석하시면서 각 전각에 대한 번와·개연 등의 불사를 이뤘다고 전한다.

이어 불갑사가 자랑하는 ‘꽃무릇’을 살펴보기 위해 산을 찾았다. 꽃무릇의 본래 이름은 석산화(石蒜花). 꽃무릇은 ‘꽃이 무리지어 핀다’해서 붙여진 애칭이라고 한다. 꽃무릇은 백로와 추분(9월5∼20일) 사이에 피는 꽃인지라 이미 져버린지 오래였다. 꽃자리에는 꽃그림자만 남아 있었다. 동백꽃을 보러갔다가 동백은 보지 못하고 막걸리집 아낙의 육자배기만 듣고 왔다는 미당 서정주의 허망한 마음도 언뜻은 이해가 갔다.

불갑사를 나온 회원들이 찾은 곳은 백제불교최초도래지 공원. 법성포구는 조기를 절여 말린 굴비로도 유명하지만 불교최초도래지 기념 성역을 조성한 곳으로 유명하다. 법성포에 들어서자 짭조름하고 비릿한 굴비 냄새가 꼬끝을 간질인다. 안개 구름에 제대로 해넘이는 볼 수 없었다. 희뿌연 조망 속에 엉켜든 하늘 바다 위를 비늘처럼 빛내는 햇살의 실루엣이 굴비 속살처럼 여물어 가고 있었다.

영광 법성포는 인도 간다라 출신의 고승 마라난타 존자가 실크로드와 중국 동진을 거쳐 옛 백제국에 불교를 전래하기 위해 백제 침류왕 때 해로를 통해 당도해 불법을 전파한 곳이다. 이국적인 간다라 불교양식의 조형물들을 관람하며 회원들은 탄성을 질렀다. ‘사면대불탑’은 백제불교도래지로서의 위용을 드러내며 자랑스럽게 우뚝 서 있었다.
불교최초도래지는 1만 3천여 평 부지에 부용루, 탑원, 전시관, 정자, 상징문이 자리잡고 있다.

백제불교최초도래지를 둘러 본 회원들이 서울 행 버스에 올랐다. 회원들은 아쉽다는 듯 포구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적막이라는 이름의 절이 닿으려면 간조의 뻘에 폐선처럼 얹혀 있는 목선들과 살 속까지 내려 꽃히며 몸을 쿡쿡 찌르는 법성포의 햇살을 뚫고 봄눈이 눈앞을 가로 막으며 휘몰아치는 저수지 근처를 돌아야 한다 무엇보다 오랜 기다림과 설레임이 필요하다/

햇살은 적막에 불타오르며 소슬금강저만 화인처럼 까맣게 드러나는 꽃살문 안쪽으로 나를 떠민다. 이 적막을 통과하고 나면 꽃과 열매를 함께 볼 수 있으리라”
-조용미 ‘적막이라는 이름의 절’ 中에서

적막 속을 통과하려면 나 역시 적막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시는 설명한다. 법성포의 해넘이가 만드는 붉은 울음. 마라난타존자를 이끈 것은 저 붉은 적막은 아닐는지.

전남 영광=최승현 기자

사면대불탑 자리에서 바라 본 백제불교최초도래지 공원 모습

다음 순례 일정
일 시 : 2008년 12월 7일 오전 7시
장소 : 동대문 이스턴호텔 앞
순례지 : 경북 상주 남장사
동참금 : 3만5천원/ 학생 2만 5천원
신 청 : 2008년 11월 30일 까지
준비물 : 운동화, 방한복, 공양미 1봉투
문의처 : 010-3267-7945 이귀인
입금계좌 : 국민933901-01-093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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