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일·김도원 기자 | 2008/12/27 12:47

기축년(己丑年) 새해가 밝았다. 소의 해이다. 소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동물이다. 농경사회에서는 듬직한 일꾼으로 근대화 시절에는 서울 유학생의 학자금 원천으로, 최근 불거진 광우병 사태에서는 시민들이 광장으로 나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불교에서도 소에 대한 많은 일화가 전해진다. 영롱한 눈으로 ‘음메’하며 주인을 따르는 소. 소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편집자 주〉

농경문화와 함께 한 친근한 이미지로 굳어져
불교에선 깨달음 과정 그린 ‘심우도’로 형성화

불교는 소를 ‘진여(眞如)’로 해석한다. 대표적인 것이 ‘심우도’다. 심우도의 여섯번째 장면인 ‘기우귀가’.

“우공(牛公), 좋은 데로 가시게나.”
영화 ‘식객’에서 주인공 성찬이 도축되는 소에게 입을 맞추고 던진 대사다. 소는 성찬의 말에 물끄러미 쳐다보다 유유히 자신의 죽을 곳을 찾아간다. 성찬을 쳐다보던, 당장 눈물을 쏟을 듯한 맑은 눈에는 ‘그래, 모두 이해한다’는 묘연한 의미를 담고 있다.

소는 인간에게는 친숙한 동물이다. ‘소는 버릴 것이 없다’는 옛 어른들의 말처럼 소는 듬직한 일꾼이자 가족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인지 소에 대한 의미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채롭게 존재한다.

민속적으로 소는 십이지의 두 번째 동물로써 방향으로는 북북동, 시간으로는 새벽 1시서 3시, 달로는 음력 12월에 해당하는 동물이다. 시간적으로 씨앗이 땅속에서 싹터 봄을 기다리는 성격을 갖는 까닭에 참고 복종하는 것을 상징하고 찬 기운이 수그러들기 시작하는 때를 이른다.

농경 사회인 우리 민족에게 소는 농사일을 돕는 일하는 짐승으로 부와, 재산, 힘을 상징한다. ‘꿈에 황소가 자기 집으로 들어오면 부자가 된다’라는 속신어나 ‘소의 형국에 묏자리를 쓰면 자손이 부자가 된다’는 풍수지리설 등을 통해서 볼 때 분명 소는 풍요를 가져다주는 부의 상징으로 인식했다.

소는 비록 느리지만 인내력과 성실성이 돋보이는 우직하고 근면한 동물이다. 주인의 생명을 구하고자 호랑이와 격투 끝에 죽은 〈삼강행실도〉의 ‘의우도’, ‘의우총’ 이야기나 눈먼 고아에게 꼬리를 잡혀 이끌고 다니면서 구걸을 시켜 살린 ‘우답동’ 이야기에서는 소의 우직하고 충직한 성품을 잘 나타내고 있다.

소는 농경문화의 상징이다.그리스신화의 ‘에우로페의 납치’는 이를 잘 보여주는 단초다. 렘브란트의 ‘에우로페의 납치’.

소는 농경사회의 도래를 의미하기도 했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이 같은 사실을 찾아볼 수 있다. 올림푸스 12신 중 주신이자 최고의 바람둥이였던 제우스가 흰 소로 변해 에우로페 공주를 크레타 섬에 데려온 뒤 결혼을 하고 크레타의 왕비로 삼았다. 이 과정에 들린 땅이 바로 현재의 유럽이다.

이 신화는 제우스 바람끼를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라 농경문화가 유럽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페니키아의 공주였던 에우로페는 문명을 의미하며, 제우스가 변한 흰 소는 농경문화를 함축하고 있다. 즉, 동양의 농경문화가 서양으로 전달됐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농경문화에 대한 흔적은 불교에도 남아 있다. 사찰에 가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심우도(尋牛圖)’가 그렇다. 심우도(尋牛圖)는 ‘선(禪)의 깨달음’을 상징하는 불화이다. 이 도상은 10가지 장면으로 구성돼 십우도(十牛圖)라고 불린다.

또한 몽골에서는 소 대신 말을 등장시킨 시마도(十馬圖)가, 티베트에서는 코끼리를 등장시킨 시상도(十象圖)가 전해진다. 이는 같은 불교문화 안에서도 가장 친숙한 소재를 가지고 깨달음을 형상화 시켰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단초다.
그만큼 심우도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크다. 실제 심우도는 불교의 진리세계에 다다르는 과정을 함축해 낸 작품으로 인간본성을 찾아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나타낸 역작이다.

첫 번째 장면은 ‘심우(尋牛)’로 동자가 소를 찾고 있다. 두 번째는 ‘견적(見跡)’으로 동자가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그것을 따라간다. 세 번째는 ‘견우(見牛)’로 동자가 소의 뒷모습을 발견한다.

네 번째는 ‘득우(得牛)’로 동자가 드디어 소의 꼬리를 잡아 막 고삐를 건 모습이다. 다섯 번째는 ‘목우(牧友)’로 동자가 소에 코뚜레를 뚫어 길들이며 끌고 가는 모습이다. 여섯 번째는 ‘기우귀가(騎牛歸家)’로 흰 소에 올라 탄 동자가 피리를 불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일곱 번째는 ‘망우존인(忘牛存人)’으로 소는 없고 동자만 있다.

여덟 번째는 ‘인우구망(人牛俱忘)’으로 소도 사람도 실체가 없는 모두 공(空)임을 깨닫는다는 뜻으로 텅빈 원(圓)상만 그려져 있다. 아홉 번째는 ‘반본환원(返本還源)’으로 본래의 근원에 돌아간다는 뜻으로 강은 잔잔히 흐르고 꽃은 붉게 피어 있는 산수풍경만이 그려져 있다. 열 번째는 ‘입전수수(入廛垂手)’는 시중에 들어가 중생을 돕는다는 뜻으로 지팡이에 도포를 두른 행각승의 모습으로 많이 그려진다.

소를 다루는 과정은 부처를 찾는 것인데 부처는 누구나 다 마음속에 가지고 있다 하므로 부처의 마음(佛性)을 내 마음 속에서 찾는다(見性)면 그때 도를 이루었다(成佛)할 것이다.

만해 한용운은 심우시(尋牛詩)의 마지막 구절에서 ‘他日茫茫苦海裏(훗날 망망한 고해 속에서도), 更敎蓮花火中開(다시금 연꽃으로 불꽃 속에 피게 하리)’라고 읊고 있다. 이는 집착하는 마음의 끈에 얽매 고통에 살고 있는 중생제도를 위해 나아간다는 것이 육도중생의 시장골목에 들어가 손을 드리운다는 뜻의 심우도 열 번째 장면 ‘입전수수(入廛垂手)’와 맥락을 같이 한다.

참선을 하거나 염불을 하거나 기도를 하는 등등 수행의 목적은 고삐 풀린 마음을 잘 다스려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고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것이다. 순간순간 변하는 마음을 따라 기뻐하고, 성내며 사는 삶 속에서 나의 마음을 얼마나 잘 다스리며 사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의 마음은 덧없는 것에 집착해 고통를 만든다. 마음의 밭을 가는 일이 참으로 어렵다.

송광사에는 목우자 보조국사 이후 ‘목우가풍(牧牛家風)’이라는 수행풍토가 내려온다. 스스로 코를 꿰어 ‘나’를 길들이는 목우가풍은 스스로 본분을 잃지 않고 여법하게 살자는 정신을 지켜나가게 계율로서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지속된 경제한파로 올해도 살림살이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다들 전망한다. 마음마저 어지럽다면 삶은 피폐해질 것이 자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올 한해는 우직히 밭을 가는 소는 인간에게 많은 의미를 전달하는 동물이다
신중일·김도원 기자

우직히 밭을 가는 소처럼 마음 밭을 갈며 자신을 살피는 한해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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