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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心으로 지핀 불가마에서 만다라를 굽다

地水火風으로 불심 빚는 세라믹 분야 김세용 명장
최승현 | 2008/06/28 14:35

“우주는 도자기요, 도자기는 곧 사람”

김세용 명장과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그에게 도자기를 전수받고 있는 아들 창묵씨가 태토를 단정한 모습으로 빚어 매끈하게 유약을 입혀 놓은 말똥말똥한 어린 도자기를 보며 흐뭇해 하고 있다..

박종화 시인은 청자가 띄는 영롱한 비색을 ‘가을 소나기 막 지나간 구멍 뚫린 가을 한 조각’에 빗댔다. 백자에 시대를 반영하는 서민의 정서가 질펀히 묻어있다면 청자는 하늘을 닮은 듯한 고귀함이 배어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빛이 서러울 만큼 아름답게 여겨졌던 고려의 도공들은 우주의 근간이 되는 지수화풍(地水火風)을 이용해 청자를 빚었다. 불교는 지수화풍공 다섯가지 요소에 의해 모든 만물이 생성된다고 본다. 이 다섯 가지 요소를 통해 천년의 꿈을 형상화하는 도예가들. 그들은 이 시대의 연금술사다.
5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민족문화예술의 상징이자, 우리 민족의 자부심인 고려청자. 혼 지핀 불가마니에서 그 옛날 도공들이 비색 향연으로 넘실대는 청자를 건져 올렸 듯 오롯이 40년 동안 도예 외길을 걸어오며 흙으로 빛을 구워온 장인이 있다.
“고려 시대의 청자가 아닌 이 시대의 청자를 만들자”는 일념으로 79년 세창도예 연구소를 설립해 청자를 빚어온 김세용 명장을 지난 24일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에 소재한 그의 연구소에서 만나봤다. 〈편집자 주〉

사진제공=세창도예연구소
이 땅에는 도자기를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제대로 된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한민국 세라믹(고온에서 구워 만든 비금속 무기질 고체 재료. 유리, 도자기, 시멘트, 내화물 등을 통틀어 이르는 단어)분야 (02-22호) 김세용 명장이 도예 분야에서 장인으로 평가받는 것은 고려청자를 넘어 시대를 반영하는 도자기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가 도자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경기공업고등학교 3학년 재학 당시 국립박물관에 가서 도자기를 접했을 때부터다.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문화재 중 유독 그의 눈길을 끈 건 도자기. 도자기가 내뿜는 영롱한 빛깔에 매료되면서 도자기를 만드는 도예가를 꿈꾸게 됐다 하니 5백 년 동안 윤회를 거듭하면서 5백번 만나야 이룰 수 있다는 부부의 緣같이 도예가로서의 삶은 그에게 ‘운명’이자 ‘숙명’이었던 것이다.

그의 도자기 인생은 196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그는 군 제대 후 도예가의 꿈을 품고 72년도에 경기도 이천에 발을 디뎠다. 도자기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남달랐지만 그야말로 적수공권(赤手空卷) 했던 김 명장은 현재 클레이아크 김해 미술관 관장인 신상호 작가의 요장(窯場)에서 도자기를 배운다.

김 명장은 이후 남곡 고승술 선생의 문하생이 돼 도예의 기본적인 공정을 익혀 나갔다. 하지만 당시 도예 분야는 분업화로 말미암아 소성, 성형, 조각 중 한 가지만 배울 수 있었다. 도예에 대한 열정을 3분의 1도 쏟지 못했던 그는 일과가 끝난 후에도 쉬지 않고 자신의 기량을 갈고 닦았다. 도자기에 대한 열정이 자신의 몸 속에서 가마 속 1300℃ 불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도자기가 좋아서, 도자기에 대한 생각이 끊이질 않아 밤에도 호롱불 밑에서 물레를 돌렸습니다. 그렇게 흙과 싸우다 보니 흙의 마음까지도 읽고 만질 수 있게 되었죠. 흙은 모든 생명이 깃들어 살고 있는 땅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물질입니다. 전 흙이 결코 무생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 옆에서 항상 숨 쉬고 있는 흙은 제 자신과 같은 존재지요.”

1년 만에 조각 과정까지 섭렵한 그는 주변 도공들을 도와주며 모은 품삯으로 가마를 동냥해 작품을 완성하는 힘든 시기를 보내다 5년 만에 자신의 요장을 개설한다.

“요장을 처음 개설했을 때가 장마철이었어요. 장맛비가 요장에 거세게 들이닥쳤습니다. 고사를 지내자 바로 비가 그치고 햇빛이 가마를 비추는 거예요. 길조다 싶었죠. 그때부터 제 자신만의 도예기법 창안에 골몰했어요. 밤낮없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고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김 명장은 비색의 청자를 더욱 아름답게 할 수 있는 작품에 도전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공정 과정을 개선하는 것부터 출발했다. 김 명장은 한국 최초로 전통가마 내부를 흙벽돌 대신 내화벽돌을 사용해 도자기를 구워 냈다.

“망송이 가마는 굽다보면 흙 등이 떨어져 작품을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와 반대로 내화벽돌에서 구운 도자기는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지만 흙벽돌보다 깨끗하게 출하됩니다. 처음 내화벽돌을 사용해 도자기를 구울 때 많은 선배들이 만류했어요. 하지만 저는 제 소신을 버리지 않았어요. 선배들에게 배운 전통적인 공정 방식을 고수하지만은 않았던 거죠. 고려시대의 도자기 제작 기법과 새롭게 개발한 기법을 병행할 때 도자기 제작도 발전을 합니다.”

그는 전통적인 도자기 제작 방식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새로운 도자기 기법 연구에 몰두한다. 제작 과정이 어려워 남들은 투각기법을 애써 외면했지만 그는 2중 투각기법 완성을 위해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며 결국 성공하기에 이른다. 문양을 따내 외피와 그릇으로서 내피의 이중구조에 모양새를 꼼꼼히 다듬어 완벽한 형태를 갖춰 놓는 독창적인 기법이 이중투각이다.

고매한 청자의 비색은 산화, 중성, 환원의 과정을 거치며 만들어지는데 환온은 공기가 들어가지 못하게 불꽃으로 가마를 채워 넣어야 한다. 이중투각 청자의 경우 성공률이 낮다. 도자기는 흙과 유약, 불의 온도 등 수 십 가지의 요소에 따라 천변만화한다.

똑 닮은 사람은 있어도 똑같은 사람은 있을 수 없듯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다. 다른 방식보다 불 때기가 힘들고 결과물 중 20% 정도 밖에 건질 수 없다. 이렇듯 이중 투각은 예술적인 완성도를 극대화하기 위한 지난한 노력의 소산물이다. 그래서인지 그가 만든 도자기들은 하나같이 정교하고 섬세한 그의 성정을 닮았다.

그런 그의 작품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그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인정받았으며, 오늘날 김 씨를 명장의 반열에 올려놨다. 그의 이런 도예에 대한 열정과 노력,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 근간에는 부처님을 향한 불심이 가마 속 불처럼 뜨겁게 자리 잡고 있다. 김 명장은 우주의 생성과정을 바라보는 불교의 시각과 도자기를 만드는 도공의 시각이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불교가 우주의 생성 과정을 地·水·火·風·空으로 해석하는 것처럼 도자기 역시 흙(地)에 물(水)을 넣고 반죽(風)한 것을 공(空)으로부터 비롯된 무심으로 빚어 불(火)로 구워내기 때문에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도자기요, 도자기는 곧 사람이다”고 그는 강조한다.

“청자를 연구하다보면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칩니다. 그 벽을 넘기 위해서 부처님의 법을 알아야겠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수없이 많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불교적 사유과정을 통해 출현했던 고려청자는 국교가 불교였던 고려시대에 만들어졌으니 이 과정을 넘기 위해서는 부처님과 인연을 쌓아야 되지 않겠냐고요. 그 후로 매일 같이 아내와 반야심경 사경과 염불을 하고 있습니다.”

줄기차게 경전을 공부하고 참선수행을 하루도 거르지 않던 김 명장의 불심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고 그의 손이 빚어내는 작품들의 완성도는 점차 높아져간다. 하지만 참선 수행을 무리하게 한 탓인지 그의 아내 따시최된(따시최된은 등불이라는 티베트 이름으로 끝까지 수행을 놓지 않고 살겠다는 그녀가 붙인 이름이다.) 이순이씨는 상기병에 걸리게 된다.

이런 연유로 김 명장 부부는 인도, 티베트 등의 불교성지를 순례하게 됐고 네충 쿠텐라, 텐진 빨모 등 외국인 스님들과 친분을 쌓는다. 그가 지은 자비존(JABI+ZONE)은 그와 그의 아내인 따시최된 이순이 씨의 불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멀리서 청자를 구입하러, 혹은 관람 차 찾아오는 스님들을 위해 지은 자비존은 방사의 성격을 띤 작은 법당이다. 순례를 하며 인연을 맺은 스님들은 한국에 방문하면 꼭 부부를 찾아온다고 한다. 김 명장의 아내인 따시최된 이순이 씨의 수필집 ‘흙에서 빛으로’는 부부의 신행활동을 면면히 살펴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흙덩이를 다루는 손과 물레를 젖는 다리가 하나가 되듯 도공과 흙도 하나가 될 때 흙의 마음을 바로 볼 수 있다고 김 명장은 설명한다. 김 명장이 만든 청자의 면면을 살펴보면 흙과 그가 둘이 아님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하다. 흙에 대한 그의 애정은 그가 지은 詩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흙이 좋아/ 흙을 찾았고/ 흙이 좋아/ 흙을 만들어/ 흙이 좋아/ 흙을 빚으며/ 흙이 좋아 흙과 살다가/ 흙이 좋아/ 흙 속으로 가리라.

이 짧은 시는 흙에 대한 김 명장의 애정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는 수행과 흙을 빚는 일이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도자기를 만드는 일은 자신을 비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도자기는 빚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비운자리에서 자연을 대변하는 흙에 자신을 맡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흙에 몸과 영혼을 맞기지 않는다면 고려청자와 같은 뛰어난 작품은 탄생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까 2006년 회갑을 맞은 김 명장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청자, 세상에서 제일 큰 청자, 세상에서 제일 정교한 청자를 만들겠다는 세가지 원에 단순함 속에 모든 것을 포용하고 담을 수 있는 청자를 만들겠다는 한 가지 원을 더 세웠다 한다.

그가 쓴 시의 마지막 행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사람은 자연과 더불어, 자연과 융합돼 살아야 한다는 김 명장은“흙과 불과 물의 조화로 만들어지는 도자기는 물질문명에 치우친 이 시대에 사람들의 정신을 자연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열쇠”라고 말했다. 그의 네 번째 원은 이렇듯 현대물질문명이 야기한 자연 파괴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비롯된다. 그는 지난 2006년 자신의 도예인생 40년을 회고하는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자기 스스로에게 바보라고 하는 김 명장. 어쩌면 자신의 생을 빛으로 승화시키는 이 시대의 도예가들은 김 명장 같은 진정한 ‘바보’를 꿈꾸고 있는 것인지도.

경기도 이천, 글=최승현 기자
사진=이한규 국장


세라믹 분야(02-22호) 김세용 명장은
1981 제6, 11회 전승공예전 입선
1984 제7회 국제현대미술제전 도예부 대상
1986 평화통일문화제 국제예술상
1997 97 도자기 공모전 문화체육부 금상
2002 대한민국 명장 선정(02-22호)
2004 일본 시네마현 초청 대한민국 명장전
2005 제12회 대한민국 명장전 (AT센터)
2006 ‘흙에서 빛으로’ 개인 작품전

주요작품소장
영국 엘리자베스여왕
달라이라마 라마 왕궁
청와대
경기도 세계 도자기엑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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